[친절한 쿡기자-손영옥 선임기자] 내 이름은 ‘링컨 V’. 자전거 제조사로는 세계 굴지인 대만계 자이언츠 집안 출신이야. 거기서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보급형이지. 내가 주인을 만난 건 지난 6월 초였어. 서울의 한 전철역 인근 자전거 대리점으로 직장 동료와 함께 나를 사러 온 그녀는 40대 중반의 여기자. 흰색 프레임에 검은 고딕 글씨가 세련돼 보이는 내 몸에 퍽 감탄하는 눈치더라고. 하지만 ‘하이브리드(산악용과 사이클용의 중간 굵기 타이어)’라는 용어도 모르는 걸 보면 자전거엔 문외한인 게 뻔해 제대로 탈까 은근히 걱정스러웠지.
그녀가 사는 잠실에서 회사가 있는 여의도 빌딩까지는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따라 20㎞ 정도. 처음엔 한 시간 반가량 걸리더니, 이제는 1시간이면 너끈히 주파하더군.
그녀를 태운 채 바람을 가르며 만나는 한강변의 풍경은 근사해. 그곳엔 늘 꽃이 있어. 싸구려 향수 같은 향기를 풍기던 아카시아가 이내 지더니 곧 짙은 주홍빛 능소화가 피기 시작했어. ‘십일홍’처럼 요란스레 피고 지는 봄꽃과 달리 능소화는 여름 내내 피어 그 진득함이 맘에 드는 꽃이야.
사람 구경도 재미있어. 한남대교를 지날 때쯤이면 건너편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오는 아가씨, 출근하듯 낚싯대를 늘어세우고 강가에 앉은 할아버지…. 어느 날 아침엔 산책 나온 할머니가 굽은 허리로 꽃무더기를 향해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데, 정작 허리 숙여 냄새를 맡는 꽃은 개망초였어. 맘이 짠하더군.
한강변은 밤이 더 멋진 곳이야. 저녁이면 쏟아져 나오는 자전거족으로 크게 붐벼. 얼마나 쌩쌩 달리는지 겁먹은 내 주인이 핸들을 꽉 잡는 통에 답답할 지경이었어. 그런 때를 빼곤 밤의 불빛이 피워 내는 한강의 야경을 나는 몹시 좋아해. 적당한 어둠과 이따금 하늘에 걸린 달, 강 건너편 고층 아파트의 옥상 조명, 그리고 산보 나온 연인과 가족들의 이야기 소리….
말 그대로 자전거 천국이 됐지 뭐야. 내 종족이 이 땅에 발을 디딘 지 100여년 만에 다시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어서 울컥 감개무량해지는 순간도 있어. 1890년대 말 처음 우리 종족이 나타났을 때 가마꾼 없이 스스로 가는 것이라 해서 ‘자행거’라고 불렸다더군. 자전거를 유행시킨 사람은 독립협회 회장을 지낸 정치가 윤치호였어. 망명에서 돌아온 서재필로부터 자전거를 선물 받은 그가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나타났을 때 축지법을 쓴다는 소문까지 돌았대. 그때만 해도 자전거는 지금의 수입차마냥 고가품이었다고. 1920년대 들어 중산층의 교통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인력거꾼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 내심 미안한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
산업화 시대를 지나오면서 내 종족은 서민의 동반자로 처지가 바뀌었다고 해. 신문배달꾼, 계란장수 등 자전거 1대에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지. 88올림픽 이후 자동차가 도로를 메우면서 자전거족 신세는 과거 인력거처럼 처량해졌어. 자동차족들이 자전거족을 어찌나 무시했던지 그 얘길 들으면 지금도 속이 상해.
그랬던 우리 자전거족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넘어서며 스키족에 못지않은 레포츠의 동반자로 신분 상승이 이뤄졌지. 초기엔 저항이 적지 않았다고 해. 1990년대 후반이었을 거야. 과천시에서 자전거 도로를 확장하는 걸 두고 “차도도 좁은 판에 웬 자전거길”이냐는 비판도 있었다지 뭐야. 산업화 시대 성장 논리가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이어져 그만큼 차가 우선이고 다른 건 뒷전이었던 거야.
하지만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며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말이 나돌더니 사람들 생각도 달라졌나봐. 2000년대 후반, 청계고가도로가 뜯겨지고 보행권이라는 어려운 용어와 함께 횡단보도가 부활했지. 그러는 와중에 우리 자전거 족의 사회적 지위도 덩달아 올라갔어. 전국에 자전거도로가 생겨나는 등 자동차족이 자전거족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하더군.
이런 양보와 상생 시대로의 변화를 생각하면 이달 초 사람들 세상에서 벌어진 증세 논란은 실망스러웠어. 복지에 쓰려고 중산층의 소득세를 올리자는 것이었는데, 넥타이 부대가 의외로 싫어하자 정부 세제개편안이 누더기가 되는 촌극이 벌어졌지.
선진국 수준의 복지가 이뤄지려면 세금을 올리는 게 마땅하다고 내 주인이 하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 이제 세금에서도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닐까. “(부자인) 네가 세금 더 낸 후 나도 낼게”가 아니라 “나는 더 낼 건데 넌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묻는 게 쿨해 보이지 않니? 자동차가 자전거에 길을 내줬듯, 복지로 가는 길에서도 형편이 좀 나은 중산층이 서민에게 길을 내줘야 하지 않을까. ‘중산층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되는 시대가 온 것 같아. 한강변에 자출족이 늘어날수록 그런 시대가 빨리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올 여름 폭염에도 늘 환하게 웃던 능소화가 보고 싶어지는 오후야.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