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늙을 줄 알아?” 노인요양보험 5주년, 노인이 돈으로…

“안 늙을 줄 알아?” 노인요양보험 5주년, 노인이 돈으로…

기사승인 2013-09-11 01:42:01


[쿠키 사회] 할아버지 댁에는 못 보던 이동식 변기와 기저귀가 놓여 있었다.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받던 할아버지는 막 퇴원해 집에 돌아온 참이다. 지난달 말 노인 700여명이 거주하는 수도권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요양기관에서 벌써 다녀갔구나.” 간호사 안상미(가명)씨는 한눈에 요양기관이 왔다간 흔적을 알아봤다. 변기·기저귀는 ‘우리 시설을 이용해 달라’는 뜻으로 주고 간 판촉상품이었다. 이 동네에서는 흔한 일이다. 평균 나이 78세의 기초수급자들이 밀집한 단지는 인근 시설들의 각축장이었다. 누군가 아프다는 소문이 돌면 물티슈 쌀 기저귀 같은 선물을 싸들고 요양보호사들이 몰려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1~3등급 노인들은 요양보호사로부터 하루 1~4시간의 수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방문요양제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전체 비용의 85%(75만~97만원)를 대고 환자는 나머지 15%(13만~17만원)만 부담한다. 기초생활수급자는 본인 부담금도 정부가 책임진다. 등급을 받은 고객 1명당 월 87만(3등급)~114만원(1등급), 1년이면 최고 1400만원에 육박하는 수입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안씨는 이웃 할머니(81) 댁에서도 비슷한 선물을 발견했다. 혼자 거동이 가능한 할머니였는데 요양기관 관계자는 침대 옆에 이동식 좌변기를 가져다 놓고 허위로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까지 교육했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와서 물어보면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여기서(좌변기) 일 본다’고 하라더라”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랬는데…”라고 얼버무렸다. 안씨는 “선물 들고 동네 오가는 요양시설장이 두셋 있다. 누군지 잘 안다”며 “그런 기관의 요양보호사일수록 서비스가 엉망이다. 휠체어에 어르신들 앉혀 놓고 마당에서 꾸벅꾸벅 졸기만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동네 정자에서 만난 90·76세 두 할머니도 같은 얘기를 했다. 할머니들은 “이태 전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서류를) 써주면 와서 청소해주고 밥도 해준다고 했다”며 “동네에 그러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출범 이래 전체 요양기관이 배로 늘어나는 동안 개인이 설립한 민간기관은 535개에서 2940개로 6배 가까이 급증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돕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요양보험은 만족도가 가장 높은 복지제도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지난 5년 민간시설을 중심으로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경쟁은 치열해졌고, 과당경쟁은 편법으로 이어졌다.

같은 단지의 안모(76) 할아버지는 며칠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등급판정 신청을 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요양보험이 뭔지도 모르는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했다. 두 딸은 외국에 거주해 대리 신청도 불가능했다. 할아버지의 등급 판정을 담당한 건보공단 직원은 “고객 확보에 혈안이 된 요양기관들이 건강한 노인들의 등급 신청까지 몰래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한 건물에 4곳 밀집… “본인 부담금 안 받아요” 탈법 난무

경기도 안산시 초지동 이마트 뒤편 100m 남짓 거리는 ‘요양타운’으로 불린다. 건물당 1~2개씩 모두 10여개의 노인요양시설이 밀집해 있다. 한 빌딩에는 H요양원·D주간보호센터 등 요양기관 4개가 2·4·5·6층에서 영업 중이다. 대부분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출범 후 1~2년 사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장사가 안 돼 문 닫는 곳은 거의 없었다. 대신 유입은 꾸준하다. 올 들어 요양원 두 곳이 오픈했다.

◇요양시설은 유망 자영업?=안산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이마트 뒤편은 5~6년 전만 해도 워낙 낙후된 곳이어서 빈 상가가 많았고 임대료도 쌌다. 초기에 요양시설들이 한둘 들어섰는데 유지가 잘 되니까 소문을 듣고 몰려들고 있다”며 “호수동 같은 중심지는 임대료가 비쌀 뿐만 아니라 (요양시설에 적합한) 빈 자리도 없다. 이만한 입지가 없다”고 말했다.

비슷한 일은 서울 외곽에서도 벌어진다. 금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경기가 나빠져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가 3~4층에 낮은 임대료로 요양시설이 많이 생겼다”며 “다른 업종과 달리 유지는 잘 되는 모양이더라”고 전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경기 침체로 공실률이 높아진 수도권 외곽 빌딩주들을 먹여 살린다는 게 소문만은 아닌 듯했다.

◇“돈 안 받습니다”…경쟁이 낳은 탈법=지난 5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수혜자는 17만명에서 35만명, 요양기관도 1만2000개에서 2만4000개로 2배씩 늘어났다. 수요·공급이 맞는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지역 편차가 심하다. 공급이 부족한 서울과 달리 수도권 외곽 및 지방도시는 공급이 수요를 한참 웃돈다. 그래서 기관들은 고객 유치와 발굴에 사활을 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내부 자료를 보면 2011년에는 요양보호사가 확보한 노인 고객 1명당 10만원의 인센티브를 준 기관이 적발됐다. 일종의 브로커 행위인 셈이다. 그보다 흔한 건 본인부담금(방문요양 15%) 면제다.

관계자들은 본인부담금 면제·할인(방문요양 기준 월 13만~17만원)이 업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수도권의 한 법인시설 대표는 “요즘 보호자들은 상담할 때 아예 ‘본인부담금을 다 받을 거냐’고 협상을 한다. ‘다 받는다’고 하면 연락을 끊는다”며 “다른 시설에서는 돈을 안 받는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경기도의 한 복지관 관장은 “이웃 기관 대표에게 ‘우리는 돈 안 받는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 꽤 많은 기관들이 돈 안 받고 환자를 유치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에서 현지조사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시설 대표들로부터 ‘본인부담금을 안 받고 있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경기도의 방문요양시설 4곳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상담을 요청했다. “비용이 좀 부담인데….” 말꼬리를 흐리자 두 기관은 “돈을 안 받겠다. (건보)공단에서 물어보면 낸다고 말해 달라”거나 “비용 조정이 가능하다. 일단 오라”고 했다. 나머지 두 곳은 “본인부담금은 받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환자와 기관들의 ‘돈 나눠먹기’=본인부담금 면제·할인은 불법이다. 불법인 이유는 돈이 곧 서비스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으면 수입은 줄어든다. 기관들은 손해를 시간 늘리기로 때운다. 이를테면 하루 1~2시간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보공단에 ‘하루 4시간 서비스’를 제공했다며 돈을 청구한다.

감시망을 피해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단 돈을 받아 입금 기록을 남긴 뒤 되돌려주거나 시설장이 환자인 양 돈을 넣었다가 빼기도 한다. 환자의 암묵적 양해 혹은 거짓말은 필수다. 이 과정에서 좀 더 적극적인 ‘공모’가 이뤄지기도 한다. 기관과 환자가 돈을 나눠 먹는 일종의 ‘보험금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이다.

지난 1월에는 서울의 한 요양기관에서 36개월 동안 8200만원 규모의 부당청 구가 적발됐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 요양보호사가 3명의 노인 환자를 하루 4시간씩 수발든다는 걸 이상하게 여긴 건보공단에서 현장 점검해 요양보호사와 환자들이 서비스를 줄이고 부당 청구한 사실을 확인했다. 서비스 시간을 절반으로 깎고 월 10만원을 할머니 환자에게 제공한 사례가 걸린 일도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돈·물건을 주고 수급자를 알선·소개·유인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도록 노인장기요양법을 개정했다. 시행은 내년 2월부터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개정법이 발효되면 본인부담금 면제 같은 불법은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며 “장기요양기관 지정 요건도 강화해 기준미달 기관의 제도권 진입을 원천 차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부 요양원, 샤워실 없어 변기 뚜껑에 앉혀 목욕

방과 복도 사이에는 1㎝가 넘는 턱이 보였다. 지난해 입소자 한 명이 턱에 걸려 넘어져 다친 뒤 시멘트로 발라 턱을 없앴는데 몇 군데를 빠뜨렸다. 샤워실은 없었다. 요양보호사들은 층마다 하나씩 있는 화장실 변기 뚜껑에 벌거벗은 어르신들을 앉혀 놓고 목욕을 시킨다고 했다. 힘들면 일반 휠체어에 태운 채 물을 뿌리거나 침대에 뉘어놓고 물수건으로 닦았다. 요양보호사는 “전용 샤워실이 없어 걱정하는 보호자들이 있는데 변기도 꽤 편리하고 안전하다”며 웃었다.

지난 4일 방문한 서울 금천구 ㄱ요양원에는 1~3등급 노인 14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치매환자가 있다는데 시설 현관문에는 걸쇠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 5분 넘게 시설을 활보해도 말 거는 이가 없다. 한참 뒤,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던 구석의 요양보호사가 다가왔다. 시설 소개를 부탁하자 그는 “인근에서 제일 싸고 가족적이다. 월 42만원이면 다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가족적 분위기’의 증거는 이런 것들이었다. 요양보호사들이 피곤하면 할머니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고, 식판 하나를 놓고 요양보호사와 환자가 밥을 나눠 먹었다. 물론 인지·물리·운동치료 프로그램은 없었다.

9일 방문한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의 텃밭 앞에는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이 요양보호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같은 시간 지하 프로그램실에선 치매노인들을 위한 ‘물고기 모빌 만들기’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매직으로 종이에 색을 칠한 뒤 물고기 모양 비닐을 채우는 일종의 인지치료였다. 오후 4시에는 2층 널찍한 생활공간에 40여명의 노인이 모여 트로트 가락에 맞춰 손뼉을 치는 운동시간이 이어졌다. 안전기구가 갖춰진 화장실은 방마다 하나씩 있었다. 각 층에는 특수목욕실이, 목욕실에는 아예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와상환자를 위한 전용 목욕통이 구비돼 있었다.

2011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시설급여 장기요양기관 평가’를 보면 A와 E등급 시설의 점수 차이는 무려 86점(최고 100점, 최하 14점)이었다. 2012년 ‘방문요양 평가’에서도 점수 차는 75점(최고 100점, 최하 25점)이나 벌어졌다. 질 차이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법인 시설 관계자들은 “이 정도 격차가 제도권 안에서 공존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서비스 질과 무관하게 시설은 건보공단으로부터 같은 돈을 받는다. 2011년 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ㄱ요양원과 A등급을 받은 수원시립요양원은 1등급 입소자 1인당 건보공단으로부터 약 126만원(총 비용의 80%)을 타냈다. 본인부담금(입소시설 20%)과 밥값 등 실비를 포함해 환자가 내는 돈의 차이도 1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환자들은 천양지차 서비스를 거의 같은 돈을 내고 받는 셈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건보공단은 A·B등급 우수시설에는 2~3%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하지만 잘하는 곳을 더 잘하게 할 당근은 있는데 D·E등급 시설의 개선을 유도할 채찍은 없다. 금천구의 ㄱ요양원이 D등급 평가를 받은 지 2년이 지나도록 달라진 게 없는 이유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낮은 등급기관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김철오 기자
ymlee@kmib.co.kr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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