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재밌는 설문조사가 눈길을 끈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4일 미혼남녀 303명을 대상으로 ‘내가 선택한 연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를 조사한 결과 여성의 40%가 ‘맞춤법을 몰라 보내는 문자마다 틀릴 때’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어 ‘뭐 하나 사주고 엄청 생색낼 때’(31%), ‘다투거나 이별한 다음 아무렇지 않게 문자 보낼 때’(17%), ‘엄마 말에 무조건 따르는 마마보이일 때’(10%) 등이었다.
2. 이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 600여개의 댓글도 재밌다.
‘맞춤법 모르면... 무식해 보임. 외제차 아무리 자랑해도... 무식한 건 용서하기 힘들지’
‘돈 많은게 낳냐? 맞춤법 잘하는게 낳냐?’
‘한국남자가 그렇지 뭐 ㅋ머리크고 옷 맨날 똑같은 남방이나 쳐입고 ㅋ싸움도 못하면서 똥폼잡고 ㅋ술값내면 지가 멋 잇는지아락ㅋ배운것도 업쪜ㅋ’
‘저건 성별따질문제가 아닌것같은데? 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맞춤법도 틀리고기초상식도 모르면 상대의 성별에 관계없이 무식하고 멍청하게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
‘내가 좋아하던 오빠는 항상 문자보낼때마다 항상 너가 /니가 라고 안쓰고 '네가' 이렇게 쓰길래 알아봤더니 '네가'가 맞는거였음 .. 신기.. 더 좋아졌었음 ㅋㅋ’
‘가관이라는 표현을 과간이라고 하는 쓰레기 같은 것들 인터넷에 꽤 많더만.보고 내 눈을 의심했음’
‘책 많이 읽으면 맞춤법 기본은 하게 되어있다 그만큼 너네들이 책을 안읽겠지 특히 남자들은 더 심하지 않나 여자 몸이나 밝히고…’
‘한글 맞춤법 틀리는 걸 영어 스펠링 틀리는 것보다 덜 부끄러워 하는 한심한 것들’
3. 성별에 관한 기사라 댓글 호응이 높다. 남녀 간 대거리가 계속되면 앞으로 몇 천개의 댓글이 더 붙을 것 같다.
4. 한국 성인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율은 2008년 기준 98.3%다. 국립국어원이 전국 19~79세 성인 1만21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비문해자 1.7%는 일제강점기 태어나 한국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70대였다.
따라서 40대 이하 한국인은 문해율이 100%에 가깝고 봐야한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 사람 문해율이 22.2%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향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의 문해율 평균 97.7%와 비교해도 우리가 높다.
5. 그런데 국어 능력이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말하고, 듣고, 읽기에 그친다면 고급 한국어 능력이라 할 수 없다. 한국어 능력이란 한국어로 된 각종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여 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라고 언어학자들은 말한다.
6. 바로 이 지점, 즉 성인이 일상생활에서 문서화된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기초문해력’)이 낮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 평균 점수가 63.6점 수준이었다. 신문 기사나 광고, 공공 기관 서식 등 일상적인 생활문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점수에 그친 것이다.
문해력 이해 정도를 0~4 등급으로 나눴을 때 이 점수는 3에 해당한다. 100% 가까운 문해율이었으므로 4가 되어야 되는데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7. 이는 곧 길고 어려운 문장, 내용이 복잡한 문장, 추론의 문장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법령문과 같은 문서는 알아먹지 못한다는 얘기다.
8. 이 ‘기초문해력’을 OECD 20여 개국과 비교했을 때 산문 문해력은 세계 13위였다. 한데 문서 문해력은 19위였다.
학력별로 비교했을 경우 대졸 이상 학력자에서 심각함을 드러냈다. 최하위였던 것. 스웨덴이 1등, 칠레가 19등이었다. 고학력자의 국어 능력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9. 모국어 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글쓰기여야 하는데 이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10. 맞춤법은 ‘산문 문해’ 능력만 있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오타 내 맞춤법 틀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問題)’를 ‘문재’라고 오타 냈다고 해서 여자 친구가 자신을 무식하다고 했다면 그 여자와 사귀지 않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문재(文才)’로 써야 할 것을 ‘문제’로 쓴다면 “내가 선택한 연인이 맞나?”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11. 여성이 ‘맞춤법’ 능력에 반응한 것은 원시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동물 암컷은 수컷을 선택할 때 종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가를 확인한 후 받아들인다. 이 법칙이 문명화된 여성 인간에게는 ‘지적능력 파악’으로 나타난 듯 하다. 남성의 지적능력은 원시시대 사냥을 많이 해올 수 있는 힘과 같다.
12. 맞춤법 틀리는 남자친구에 대해 여성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종 보전’의 위험성을 감지했다는 신호이다. 즉 맞춤법이 틀려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남자가 ‘생각하지 않고 살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아’ 실망하는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