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나노섬유 양산 기술을 빼돌린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F사의 전 연구소장 조모(44)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9일 밝혔다. 달아난 전 마케팅본부 부사장 조모(50)씨 등 3명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했다.
나노섬유는 산업용 필터, 아웃도어 의류 등에 사용되는 지름 1㎛ 미만의 고기능·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전 연구소장 조씨 등 F사의 관리자급 직원 4명은 지난해 1월 나노섬유 제작 및 연료배합 기술, 구매자정보 등을 외장형 저장장치로 빼돌린 뒤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에서 나노섬유 생산 공장을 세우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 부사장 조씨 등 2명은 F사 본사에 미국 진출을 제의했다가 거절당하자 전 연구소장 등 다른 직원 4명과 함께 직접 별도 법인을 세워 미국에 생산 공장을 짓기로 공모한 것으로 조사됐다.
영업비밀을 빼돌린 일당은 지난해 6월 미 오클라호마주(州) 클레어모어시(市)에 나노섬유 생산법인 N사를 세웠다. 이들은 전 부사장 조씨를 대표로 선임한 뒤 시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생산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 연구소장 조씨 등 3명이 자금난과 처우에 불만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등 갈등이 빚어지면서 건설은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유출된 F사의 기술은 2008년 기준 기술보증기금 평가가치로 78억원, 사설 회계법인 평가가치로는 670억∼810억원에 달한다. 피해업체의 매출액 등을 고려할 때 이 수사로 5년간 36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F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전 연구소장 조씨의 주거지와 이메일을 압수수색해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고 포렌식(자료 복원작업) 과학수사기법으로 영업비밀을 빼돌린 흔적을 확인했다.
경찰은 “연구용 나노섬유를 생산하는 회사는 많지만 제품으로 판매하는 회사는 F사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며 “국내의 경쟁력 있는 기술이 해외로 유출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