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다. 어릴 적부터 친오빠처럼 지내온 남자. 자기 앞에서 방귀를 뿡뿡 뀌는 건 예사고, 함부로 볼을 만지고 어깨동무를 하고 안아주고, 정말 격의 없는 사이. 그런데 스무 살 여름 어느 날, 그가 남자로 느껴진다. 아무데서나 훌러덩 옷을 갈아입는 그를 쳐다보기가 민망해지고, 그의 복근을 보니 가슴이 뛴다. 사실 고백도 해봤다. 큰 용기를 냈다. 하필 그 날이 만우절이었다. 오빠는 “내가 깜빡 속을 뻔 했다”며 한바탕 웃고 만다. 첫눈이 내리던 날, 다시 고백을 했다. 그런데 별 반응이 없다. 둘이 극장에 가서도 자기는 영화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데 오빠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낄낄거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다. 야구만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는데 스무 살 여름, 그녀가 마음에 들어왔다. 마산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입이 거친 그녀, 서울 강남에서 자란 그는 그런 그녀가 귀엽다.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 자꾸 그녀가 생각난다. 몇 번을 용기 내 고백해보려 하지만 막상 그녀의 얼굴을 보면, 목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말이 안나온다. 그렇게 여름이 갔고 가을이 갔다. 마침내 그해 마지막 날, 그녀를 보러 6시간이 걸려 찾아간 길, 그는 잠깐 얼굴만 보고 나오면서 “너 바보냐, 정말 모르냐. 나 너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린다. 떨리는 첫 키스와 함께.
반환점인 10회를 돌며 순간 최고 시청률 10%를 넘긴 케이블 채널 tvN의 ‘응답하라 1994’ 얘기다. 전작인 ‘응답하라 1997’의 기록을 넘어선 ‘응답하라 1994’는 3%만 넘어도 ‘대박’으로 분류되는 케이블 방송가에서 모처럼 나온 대형 히트작이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캠퍼스의 낭만, 폭염, 농구대잔치, 김일성 사망 등 1994년의 아련한 추억도 그 하나다. 하지만 더 큰 것은 스무 살 청춘의 힘이다. 누구에게나 있었고, 누구에게나 닥칠 ‘스무 살’은 듣기만 해도 아련하고 가슴 뛰는 말임에 분명하다.
드라마처럼 그 무렵 사랑은 종종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게 그다지 관심이 없고, 내가 끌리지 않은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 내가 차마 고백하지 못해 애끓어 하고, 그 사람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그 역시 나로 인해 그렇다.
‘응답하라 1994’를 보면서 나의 스무 살을 떠올려본다. 세상 물정 잘 몰랐고 지금보다 순수했던 시절, 수줍음이 많아 잘 표현하지 못했고,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다 알아줄 거라 생각했던 시절. 모든 것이 서툴렀기에 후회도 많았던 그 때.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산전수전 다 겪은 드라마 속 82세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겠다고. 지금껏 살아보니 가장 후회되는 일이 좋아하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지금 이런 문제로 밤잠을 못 이루는 청춘이 있다면 일단 한번 해보시라. 그러다가 차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나마 친했던 관계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용기를 내지 못해 세월이 흐른 후 깊은 후회를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스무 살이라면, 해보겠다. 그게 스무 살의 특권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