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2013 프로야구 준우승에 빛나는 두산베어스의 겨울이 춥다. 열세라는 평가 속에 준플레이오프(준PO)·플레이오프(PO)를 모두 극복하고 한국시리즈까지 오른 두산의 겨울은 우승팀 삼성라이온즈 못지않게 훈훈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럴만한 ‘온기’가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두산은 27일 김진욱(위 사진) 감독을 경질하고 2군 송일수 감독을 제9대 1군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경질’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진 않았지만 김 감독의 임기가 1년 남았고, 자진 사퇴가 아니라는 점에서 경질이었다. 보도자료 발송 문자메시지를 본 기자들도 순간 어리둥절할 정도였으니 팬들의 동요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인터넷 각종 게시판에는 팬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일부 팬들은 “두산 미쳤다” “완전 X판이구나”라는 등 거친 표현을 동원하기도 했다.
사실 감독의 교체는 구단의 고유 권한이다. 외부에서 선뜻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내부에서 인정할만한 근거가 있고, 그 근거를 외부에 알렸을 때 어느 정도만이라도 납득할만한 개연성이 있다면 거센 반박은 할 수도 없고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두산의 감독 교체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최소한 팬들의 입장에선 그럴만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일단 두산이 밝힌 감독 교체의 이유다.
두산은 김 감독 경질 배경에 대해 “승부에서 결정적인 순간 밀어붙이는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두산 관계자는 “구단 사장이나 단장도 1년 내내 구단의 모든 경기를 본다”며 “성적은 좋았지만 지켜보면서 김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 ‘저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꽤 있었다. 이런 것들이 쌓여가며 결국 교체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이 무조건 부족했다는 게 아니라 좀 더 치고 나가기 위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팬들은 반대로 준PO(5전3선승제)의 ‘리버스 스윕’, 전문가 대부분의 예상을 깨버린 PO 승리, 한국시리즈에서 전문가들이 ‘최강 전력’이라고 입을 모은 삼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점 등 김 감독이 나름대로 보여 준 ‘승부사 기질’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아우성이다.
감독 교체를 둘러싸고 개운치 않은 ‘비하인드’도 흘러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6일 장민석(장기영)과 1대1 트레이드 돼 넥센히어로즈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 윤석민 사례다. 윤석민은 일찌감치 두산의 차세대 오른손 거포로 촉망을 받던 타자다. 이런 윤석민을 트레이드시키는 과정에서 구단은 김 감독과 상의는커녕 언질 한 마디 조차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김 감독과 구단 수뇌부 간의 다툼이 있었고 하루 뒤인 27일 김 감독의 경질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어이없는 사건이다.
팀 전력 구성의 중심에는 감독이 있고, 그 전력을 구성하는 것은 선수다. 그런데 구단이 감독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선수를 바꾼다는 것은 자신들이 고용한 감독의 존재 의미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선수 트레이드 역시 구단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비교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바로 FA로 떠난 이대형(KIA)의 보상선수로 사이드암 투수 신승현을 지명한 LG다.
LG는 백순길 단장이 “무조건 현장에서 원하는 선수를 데려오겠다”고 했고, 송구홍 운영팀장이 26일 마무리 훈련이 펼쳐지고 있는 일본 고지까지 찾아가 김기태 감독과 최종 상의를 했다. LG는 이런 과정을 거쳐 유망주를 데려올 것이라는 외부의 예상과 달리 내년 시즌을 위해 ‘즉시전력감’인 신승현을 데려오게 됐다.
두산 관계자는 “그 부분(윤석민 트레이드 결정에 김 감독 배제)은 사장·단장·감독 외엔 알 수 없는 사안이다. 하다못해 코치가 말했다 해도 100% 믿을 수는 없다”며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 감독 경질에 팬들이 폭발한 것은 그 이전 팀 간판급 베테랑들의 ‘무더기 이탈’이라는 도화선이 있었다.
이종욱, 손시헌(이상 NC), 최준석(롯데·28일 보상선수 김수완 지명)은 FA로 풀린 선수들이었지만 2차 드래프트에서 알토란같은 선수인 임재철을 ‘잠실 라이벌’ LG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에 팬들은 “왜 보호선수 명단에 넣지 않았느냐”며 허탈해 했다.
두산 관계자는 “2011년 2차 드래프트에서 베테랑들 지키려다가 이재학(NC)을 빼앗겼다. 이재학은 당시에도 구단에서 너무 아까워했다”며 “올해 이재학 성적(국내 선수 평균자책점 1위)이 어땠느냐. 그래서 ‘이번엔 절대 유망주 뺏기지 말자’는 생각에 불가피하게 보호선수 명단(40명)에 묶을 수 없는 베테랑 선수들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임재철이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팀의 얼굴과 같은 선수들이 자꾸 빠져 나가니 팬들이 느끼는 허탈감은 당연히 이해한다”며 “하지만 2차 드래프트의 경우 피해보는 구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제도상 허점이 존재한다. 팬들이 잘 모르는 구단만의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프로 구단이라는 게 팬들에게 칭찬받을 때보다 욕먹을 때가 훨씬 많다”며 “결국 모든 건 향후 성적에 달린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