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같은 구장 쓴다고 이런 것도 닮나.’
프로야구 두산베어스의 2013년 겨울이 그 어느 팀보다도 차갑습니다. 베테랑 선수들의 무더기 이탈, 감독 경질, 쏟아지는 팬들의 원성…. 호재는 없고 악재만 가득한 준우승 팀의 씁쓸한 무대 뒤의 모습. 2등을 이뤄냈다는 박수 소리보다 1등을 못했다는 문책의 목소리가 더 큰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근데 사실 야구 좀 오래 봤다는 팬들이라면 최근 두산의 모습이 별로 낯설지 않을 겁니다. 낯설기는커녕 오히려 ‘딱’ 하고 떠오르는 팀이 있을 겁니다. 바로 두산과 ‘잠실라이벌’인 LG트윈스의 2002년입니다.
당시 LG는 올 시즌 두산처럼 4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했습니다. 완전히 같진 않지만 당시 LG가 시즌 막판까지 경쟁을 펼치다 5위로 밀어낸 팀이 두산이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올해 LG와 두산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야 각각 2위와 4위로 순위가 최종 결정되는 혈전을 치렀습니다.
LG도 두산처럼 ‘공포의 4위 팀’이었습니다.
당시 LG는 열세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듯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3위 현대유니콘스, 플레이오프(PO)에서 2위 KIA타이거즈를 연파하고 삼성라이온즈가 기다리고 있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공교롭게도 현대는 올해 준PO에서 두산이 꺾은 넥센히어로즈의 전신이죠. 한국시리즈 상대가 삼성인 것도 같습니다.
LG도 ‘최강 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턱걸이 팀’이었습니다.
LG는 싱겁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 한국시리즈에서 승부를 2승 4패까지 끌고 갔습니다. 시리즈를 끝낸 6차전 9회말 이승엽의 극적인 동점 스리런 홈런이 나오지 않았다면 7차전은 오히려 LG가 이겼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LG는 승자 못지않은 박수를 받은 패자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올해 두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체력적 소모가 극심한 상태라는 시선을 비웃 듯 삼성을 3승 1패까지 위협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어찌 보면 승자는 삼성이었지만 ‘주연’은 두산이었습니다.
그런데 LG는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김성근 감독 경질을 결정합니다. 최근의 두산처럼 말이죠. 경질의 배경에 ‘프런트’가 껴있는 것도 똑같습니다.
최근 두산이 이종욱, 손시헌, 최준석, 임재철, 김선우, 이혜천 등 팀의 간판급 선수들을 모조리 떠나보냈듯, LG도 2002년 이후 준우승의 주역인 김재현(현 SBS 해설위원), 이상훈(현 고양원더스 코치)이 팀을 떠났습니다. ‘FA 홀대’를 받은 류지현(현 LG트윈스 코치)은 다소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정합니다.
요즘 두산 팬들 못지 않게 당시 LG 팬들도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했습니다. ‘삭발 시위’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니까요.
이제 닮나 안 닮나 지켜볼 포인트는 하나 남은 것 같습니다. 바로 향후 성적입니다.
LG는 2002년 이후 좀처럼 팀의 구심점을 찾지 못하며 지난해까지 10년 간 가을야구 무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김성근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향후 성적만 좋으면 최근 팬들이 원망하고 있는 두산의 행보는 한 순간에 ‘오판’이 아닌 ‘신의 한수’가 됩니다. 어제 통화한 두산 관계자도 “결국 내년부터 성적에 모든 게 달린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딱 맞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