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비가 오면 온몸이 쑤셔요.” 그러더니 “그래도 골키퍼라서 행복해요”라며 웃는다. 팔과 다리를 보여 주는데 곳곳에 멍이 들어 있다. “예상한 대로 슛이 날아와 막아내면 정말 짜릿해요. 그 맛에 골키퍼를 하죠.”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두 골키퍼 송미영(38·인천시체육회)과 박미라(26·삼척시청). 둘은 제21회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A조 예선 1차전 때 몬테네그로에 24점을 내주며 패해 의기소침했다. 하지만 9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피오니르 체육관에서 끝난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한국의 29대 26 역전승을 이끌어 낸 뒤 환하게 웃었다.
둘은 이번에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무대를 밟았다. 송미영은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은사인 임영철 감독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어 1990년대 초 주니어 시절 이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박미라는 올해 SK핸드볼코리아리그에서 삼척시청을 우승으로 이끈 주역이다.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은 박미라는 44%의 방어율로 시즌 최우수골키퍼상과 베스트7도 휩쓸었다. 이런 선수를 임 감독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송미영과 박미라는 대구시청 주희(24)의 부상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 번갈아 골문을 지켜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둘은 지난달 말 노르웨이에서 개막한 모벨링겐컵부터 한 방을 쓰며 친해졌다.
핸드볼 골키퍼의 운명은 가혹하다. 7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시속 100㎞로 날아오는 슛을 온몸으로 막아 내야 한다. 힘들고 부상이 많은 포지션이다. 송미영은 몬테네그로전 때 전반 10분쯤 상대의 슛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다. 송미영은 한동안 코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데 송미영은 이렇게 말했다. “핸드볼 공에 맞으면 아플 것 같죠? 그런데 희한하게도 안 아파요. 긴장하면 아픈 걸 못 느껴요. 그런데 그땐 정말 아팠어요? 모벨링겐컵 때 맞은 부위를 또 맞았거든요.”
이때 박미라가 끼어들었다. “몬테네그로 선수가 일부러 공으로 언니 얼굴을 때린 것 같아요. 우린 보면 알거든요. 그런데 골키퍼는 고의적으로 맞아도 상대 선수를 때릴 수 없잖아요. 경고도 못 줘요. 그래서 분통이 터질 때가 많아요.”
최근 공격형 핸드볼이 유행하면서 골키퍼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예전엔 슛만 잘 막으면 됐지만 요즘엔 슛을 막는 건 기본이고 재빨리 속공으로 연결해야 한다. 지난 10월 말부터 한 달간 한국 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초빙된 자우마 포르트(46·스페인)는 “유럽에선 골키퍼를 팀 전력의 50% 이상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한 채 공으로 온몸을 난타당하는 송미영과 박미라. 그런데 이 두 사람, 골대 앞에만 서면 행복하단다.
베오그라드(세르비아)=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