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반찬이 이게 뭐야!”
밥을 먹다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 선수들은 움찔합니다. 반찬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선수들은 알고있습니다. 감독의 반찬 투정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제21회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조별 예선을 치르고 있는 임영철(53) 감독은 매일 선수들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몬테네그로와의 대회 예선 첫 경기에서 패한 이튿날인 8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훈련 분위기는 살벌했습니다. 네덜란드와의 2차전을 앞두고 임 감독은 선수들을 심하게 다그치더군요. 화를 내며 고함치는 소리가 훈련장을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정신을 번쩍 차린 선수들은 네덜란드를 29대 26으로 꺾고 첫 승을 따냈습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던 중 임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에게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았어? (승리를) 즐겨. 즐기라구!” 임 감독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더군요.
10일 콩고와의 예선 3차전에서 한국은 34대 20으로 이겼지만 전반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습니다. 방심한 탓에 약체인 콩고를 상대로 경기 주도권을 틀어쥐지 못했습니다.
경기 후 선수들은 불호령에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했을 겁니다. 그러나 임 감독은 선수들에게 “아직 중요한 경기가 많이 남았으니까 마음 다잡자” 하고 타일렀습니다. 이튿날 한국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경기 초반부터 도미니카공화국을 압도하며 51대 20 대승을 거뒀습니다. 3연승을 내달린 한국은 조별 예선 3승1패(골 득실 +46)를 기록, 몬테네그로(3승1패·골 득실 +41)를 제치고 조 2위로 올라섰습니다.
임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유독 심하게 선수들을 몰아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었죠. 이번 대표팀 17명 중 무려 11명이 1990년대생이고, 평균 연령은 24.4세밖에 안됩니다. 세대교체를 단행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표팀엔 송미영(38·인천시체육회), 우선희(35·삼척시청) 등 베테랑 선수들이 있지만 향후 주전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입니다. 이들을 ‘막강 우생순’으로 조련하는 것은 결코 녹록한 작업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임 감독의 지도를 받아 온 대표팀의 최고참 송미영(38)의 얘기입니다.
“나도 임 감독님께 꿀밤을 맞으면서 핸드볼을 배웠어요. 임 감독님은 훈련 땐 호랑이처럼 무섭지만 평소엔 자상해요. 엄하면서도 자상한 아버지 같은 존재죠.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임 감독님의 호통에 눈물을 쏙 빼면서도 존경하고 따르게 됩니다.”
송미영은 임 감독을 ‘호랑이 같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여우 같기도 합니다. 용의주도한 임 감독은 선수들에게 화를 내거나 농담을 할 때 즉흥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하는 거죠. 치밀한 조련사라고 할까요.
베오그라드=글·사진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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