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권력 앞엔 부모도, 자식도 없다. 부왕은 장자세습의 원칙에도 2인자 세자에게 권력을 주기 싫어 죽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왕 27명 중 적장자로서 왕위에 오른 사람은 8명뿐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태조 이성계는 5남 방원이 권력욕을 보이자 방원의 배다른 동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해 버린다. 한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역공에 나선 방원은 정도전 등의 신권을 제거하고 방석, 방번도 죽여 버렸다.
이렇게 권력을 잡아 태종이 된 방원은 아버지의 전철을 밟는다. 적장자 양녕이 ‘코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치고 세자에서 폐위시켜 버린다. 기생들과 놀아나고, 형 정종의 애첩과 사통을 벌였다는 이유를 댔다. 14년 간 세자 수업을 시켜놓고도 자식의 ‘호방함’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인조는 청에 침략 당해 ‘삼전도의 수모’로 예를 갖춰 간신히 왕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병자호란 때 청의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던 2인자 소현세자가 9년 만에 귀국했다. 인조도, 조정 대신 누구도 반갑지 않았다. 더구나 인조는 쿠데타로 왕이 됐으니 그냥 둘 리 없다.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어찌됐든, 그렇더라도 왕권은 세자손에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인조는 소현의 동생(훗날 효종)에게 왕권을 넘기려 했다. 아들 셋을 둔 소현세자빈 강씨가 저항했다. 강씨와 손자 셋은 제주도로 유배돼 요절, 풍토병 등 이런저런 이유로 죽는다. 인조는 며느리를 포함, 2인자 싹을 아예 제거해 버린 것이다.
영조는 42세라는 늦은 나이에 얻은 사도세자를 얻었다. 그리고 15세 되던 해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켰다. 당연히 세자에게 세가 형성됐다. 그러자 영조는 국정운영의 미숙을 들어 사사건건 꾸중하더니 끝내는 칼을 휘두르며 자결을 명했다. 신하들이 간신히 뜯어 말렸음에도 광기에 휩싸인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자물쇠를 잠가 버린다. 2인자가 그렇게 8일 만에 죽는다. 영조는 14년을 더 왕노릇한다.
이승만 대통령도 2인자를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초대 대통령이 된 그는 농지개혁 문제와 친일 지주 소유 땅 문제 등 그야말로 정권의 운명을 가르는 과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그 적임자로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으로 앉혀 해결해 나갔다. 당시 농림부는 지금의 ‘산업’에 해당하는 막중한 부서였다.
한데 조봉암이 농지개혁과 친일청산으로 인기가 높아지자 위협을 느꼈고 이에 간첩 혐의를 씌워 사형에 처해 버린다. 위협적 권력 2인자는 그렇게 사라졌다. 조봉암 이어 2인자가 된 이기붕은 ‘모범적 2인자’이다. 권력 문고리에 절대 손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는 김형욱이 2인자 권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모범적 2인자는 김종필인 듯 하다. 전두환 시대 ‘성공한 2인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성서에서도 2인자 제거가 나타난다.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은 친아들 요나단을 의심하여 죽이려 했다. 그는 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2인자 다윗을 시기했고 죽이려고 군사를 동원했다. 사울은 하나님께 선택되어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으나, 권력이 뭔지 그렇게 변한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당한 다윗도 왕권을 넘본 아들 압살롬 무자비하게 응징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2인자 장성택이 한 방에 갔다. 권력자의 고모부인데도 가차 없다. 공포정치의 전형이다. 이런 ‘반공 교육’이 없다.
이건 드라마가 아니다. 우리에게 실제적 위협이자 공공의 적 얘기다. 그렇다면 단종과 같이 어린 김정은을 광포한 독재자로 만들어가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빨리 알아내야 한다. 김종서 황보인 등의 대신을 때려죽인, 즉 세조의 책사 한명회와 같은 ‘매트릭스(모체)’가 있다는 얘기다. 그 세력을 밝히고 대응하는 것 등이 국가정보원 존재의 이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