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배우 심은경(20)은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눠보면 누구나 독특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예컨대 그는 음악 취향부터 유별나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때 심은경은 1960~70년대 활동한 영국 밴드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격찬을 쏟아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좋아한 밴드예요. 사운드를 들어보면 굉장하죠. 이 밴드 음악은 시대를 앞서간 음악이면서 동시에 아날로그의 감성도 갖고 있어요. 혁신적인 음악을 한 팀이라고 생각해요.”
이상할 건 없지만 그가 올해 갓 스무 살이 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평범하게 들리진 않는 발언이었다. 요즘 즐겨듣는 음악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새 그는 클래식에 푹 빠져 있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드뷔시 라벨…. 다 좋아요. 누구 한 명을 꼽기가 힘드네요.”
심은경의 비범함이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그가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다. 2004년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MBC)로 데뷔한 심은경은 영화 ‘써니’(2011)로 스타덤에 올랐다. 전라도에서 서울로 전학 온 주인공 나미 역이었다. 대중은 심은경의 놀라운 재능에 감탄했다. 그는 12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도 사월이 역을 통해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보여줬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수상한 그녀’(감독 황동혁)는 심은경의 진가를 또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수상한 그녀’는 70대 오말순(나문희) 여사가 갑자기 20대 ‘꽃처녀’로 돌아가게 되면서 겪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담아낸 영화. 심은경은 마음은 70대, 외모는 20대인 인물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너무 과장해서 연기하면 어린 애가 할머니 흉내를 내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반대로 ‘오버’를 아예 안 하면 그냥 20대처럼 보여 영화가 재미없었겠죠. 그래서 나문희(73) 선생님 연기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어요. 선생님의 말투, 행동, 걸음걸이는 어떠한지, 연기할 때 넣는 추임새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런 ‘포인트’를 잡은 뒤 저만의 매력을 거기에 보태 연기를 했어요.”
‘수상한 그녀’의 상영시간은 124분이다. 그런데 20대로 변한 오말순, 즉 심은경이 이끌어가는 분량은 이 중 90분이 넘는다. 사실상 심은경을 위한 영화인 셈이다. ‘수상한 그녀’엔 다소 진부한 구석도 적지 않지만 심은경의 호연(好演)이 있기에 누구나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제가 맡아야 할 역할의 비중이 크더라고요. 제가 연기를 제대로 못하면 작품 전체가 엉망이 될 수 있는 작품이었죠. 부담이 컸어요. 그런데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과 얘길 나누면서 완벽하게 인물을 그려낼 수 있겠단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죠.”
심은경은 2011년 1월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출신 중국계 첼리스트 요요마(59) 등을 배출한 뉴욕의 ‘프로페셔널 칠드런 스쿨’에서 고교 과정을 수학했다. 유학 중 잠시 귀국해 ‘광해…’ 등을 찍었지만 대부분 시간은 미국에서 보냈다. 3년 전 그가 유학행을 결정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①평범한 학생으로 살아보고 싶다. ②좋은 배우가 되려면 견문을 넓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유학기간 중 뒤늦은 사춘기도 겪었고 영어 때문에 많이 힘들기도 했어요.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떠났던 유학이 아닌 만큼 지난해 6월 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우리나라에 들어왔죠. 아직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없어요. 대학이란 게 내 삶에서 진정 필요한 ‘과정’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심은경은 인터뷰 내내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조숙한 모습이었다. 올해 데뷔 10년을 맞은 그에게 10년 뒤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이러했다.
“제가 감독이 돼 연출한 작품이 한 편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정말 바쁘게 사는 사람이 돼 있었으면 해요.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사람(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