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박주영(29·아스날)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열흘가량입니다. 오는 31일 자정(한국시간 2월 1일 오전 9시)에 마감하는 유럽 축구의 겨울 이적시장에서 새 소속팀을 찾지 못하면 축구인생을 다시 설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반년 전처럼 전해지는 소식도 없이 시간만 야속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박주영은 지금 떠날 곳을 찾고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언제부터 꼬였나
박주영은 청소년대표팀 시절까지만 해도 ‘축구천재’로 불렸습니다. 차범근(61), 최순호(52), 황선홍(46), 최용수(41)의 계보를 잇는 한국 축구의 대형 스트라이커로 성장할 거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죠. 2012년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일본의 골문을 열어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조국에 안긴 주인공도 박주영이었습니다.
박주영의 축구인생 실타래가 꼬이기 시작한 시기는 2011년 8월일 겁니다. 프랑스 AS모나코에서 잉글랜드 아스날로 이적한 시기였죠. 아스날은 유럽 최고 명문구단입니다. 박지성(33·PSV 에인트호벤)이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뒤로는 우리나라 선수가 입은 최고의 ‘명품 유니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러나 아스날 유니폼은 박주영에게 꼭 맞는 옷이 아니었던 걸까요. 박주영은 한 시즌을 마감할 때까지 아르센 벵거(65·프랑스)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지 못했고, 다음 시즌 스페인의 하위권 구단인 셀타 비고로 임대됐습니다. 스페인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한 시즌 만인 올 시즌 아스날로 복귀했지만 환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아스날은 곧바로 박주영을 비전력 선수로 분류해 교체 명단에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시즌은 벌써 절반을 넘겼는데 박주영이 그라운드를 밟은 시간은 13분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아니었죠. 중요도가 가장 낮은 리그컵대회 캐피탈원컵 16강전에서 교체선수로 잠시 출전한 게 전부였습니다. 이마저도 아스날이 패하고 탈락하면서 박주영은 더 이상 벵거 감독의 호출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급도둑”
벵거 감독은 선수단의 하락한 체력을 감안, 지난달부터 순환 차출 방식으로 변경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주전의 체력 안배가 주된 목적이지만 비주전 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박주영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박주영이 벵거 감독에게 밉보인 걸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벵거 감독의 구상에서 박주영이 없을 뿐입니다.
팀의 전술이나 감독의 구상에 따라 선수의 성패가 엇갈리는 것은 박주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올 시즌 첼시의 사령탑으로 복귀한 뒤 돌풍을 일으킨 조제 무리뉴(51·포르투갈)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기여도가 높은 후안 마타(26·스페인)를 사실상 전력에서 제외했습니다. 기성용(25·선덜랜드)은 올 시즌 임대 이적한 선덜랜드에서 기존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바꾸고 잠재력을 끌어올렸죠.
감독의 구상에서 벗어난 선수는 다른 구단으로 이적을 시도하면 됩니다. 구단은 이적료로 자본을 축적하고 선수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새 소속팀에서 몸값을 높이는 게 서로에게 좋은 결과일 겁니다. 박주영에게 놓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박주영의 몸값이 비싸 다른 구단의 러브콜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거죠.
박주영은 아스날과 2015년 여름까지 계약하면서 주급 4만5000파운드(약 7880만원)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계약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편적인 경우에서 구단은 출전횟수와 관계없이 선수에게 주급을 지급합니다. 명문 아스날에는 출혈 수준이 아니라도 분명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영국 여론도 박주영을 곱게 바라보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일 겁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박주영과 관련한 인터넷뉴스 게시판에서는 “아스날은 한 사람에게 매주 7000만원씩 주고 프리미어리그 경기도 보여주는 신의 직장이다. 내가 박주영이면 남는다”거나 “출전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기사만 쏟아지는 선수 1위”라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박주영이 이적을 시도해도 검증된 것보다 높게 책정된 주급을 감당할 구단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잔류를 선택해도 재기할 기회는 있지만 젊은 주전들과 벌어진 기량차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구단에서 존재감을 끌어올린 뒤 꼬인 실타래를 풀고 재기하기 위해서는 남은 열흘여의 이적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급 삭감이라는 출혈도 감수해야겠죠. 물론 선택은 박주영의 몫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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