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저 선수 좀 불러봐. 아니다. 내가 갈게.”
중앙선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박종환 성남FC 감독(76)이 쏜살같이 반대편까지 뛰어갔다. 그러더니 자신의 주문을 이행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일일이 포즈를 취하며 훈련을 지도했다. 3일(이하 한국시각) 성남이 동계훈련을 펼치고 있는 터키 안탈리아의 미라클 리조트 내에 위치한 훈련장에는 ‘백전노장’ 박 감독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희수(77세)에 가까운 나이지만 지도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강했다.
보장된 주전선수는 없다
박 감독은 2일 오후 훈련을 취소했다. 시차적응과 쉼 없이 이어진 동계훈련에 지친 선수들에게 휴식을 부여했다. 그런데 선수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자발적으로 개인훈련을 실시했다. 웨이트트레이닝과 볼 훈련을 병행했다. 좀처럼 웃지 않는 박 감독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흘렀다. 그는 “선수들이 알아서 훈련을 하더라. 개인 기량이 부족하면 팀워크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선수들은 100%를 뛰어 넘어 120%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젠 스스로 경쟁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보장된 주전선수는 없다. 땀 흘리고 노력하는 자만이 경기를 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치열한 주전 경쟁은 제파로프, 기가, 하밀에게도 적용된다. 박 감독은 “터키에 와서 외국인 선수들과 면담을 했다. 나는 이들에게 단호하게 얘기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안 할 거면 하지 말라’고 했다. 또 ‘너희들이 여기서 잘해야 가치가 더 올라갈 것 아니냐’고 하니 외국인 선수들이 ‘이런 조언을 해주는 감독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외국인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다워야 한다. 솔선수범해야 한다. 이젠 이들도 죽기살기로 한다”며 흡족해했다.
‘파도축구’ 베일 벗는 중
과거 박 감독의 축구 스타일은 ‘토털사커’에 가까웠다. 1989~1996년 성남 일화와 2003~2006년 대구를 이끌던 시절에 선수 전원이 공격과 수비를 하면서 한 발 더 뛰는 축구를 구사했다. 일명 ‘벌떼축구’로 불렸다. 2014년, 박 감독은 ‘파도축구’를 천명했다. 박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와 미드필더, 수비수로 이어지는 3선이 차례대로 몰아친다는 얘기다. 이들의 연계성이 끊어지면 파도가 아니다. 또 파도는 바람에 의해 생성된다. 바람의 세기처럼 강약을 조절하면서 패턴 플레이를 펼칠 것”이라고 했다. 수비는 거머리처럼 공격수에게 떨어지지 않는 것을 강조했다.
호랑이 발톱은 숨기고 있다
각진 바위도 오랜 세월에 걸쳐 비, 바람에 깎여 둥근 모양이 되듯 박 감독도 세월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지시하던 시절은 지났다. 현 상황에서 내가 예전 방식대로 강하게 나가면 선수들은 더 가라앉게 된다. 지금은 한 발 물러나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로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한 번 호랑이는 영원한 호랑이다. 박 감독은 “발톱은 숨기고 있을 뿐이다. 선수들도 나의 의외의 모습에 더 긴장한다. 역발상으로 선수들의 프로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