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남북이 합의한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명단에 포함된 박운형(93·경북 경산시) 할아버지는 “이북에 있는 가족들을 영원히 못 만나게 될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1920년 평안북도 태천군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오는 20일 딸 명옥(67)씨와 남동생 운화(77), 여동생 복운(73)씨 등을 만난다.
그는 지난해 9월 북한의 일방적 연기로 취소된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였다.
박 할아버지는 “지난해 이북의 가족들을 만나려고 건강관리협회에서 건강관리까지 다했지만 결국 못 만났다”며 “아이고 뭐 그렇게 내 마음대로 다 되는 일이 없구나 싶었지”라고 지나간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의 나이 25살이던 해 해방이 됐고 딸 명옥씨가 태어났다. 동시에 그는 토지개혁 과정에서 지주로 몰려 고향을 떠나 평양의 연초공장에 취업했다. 해방둥이로 낳은 딸 명옥씨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할아버지는 “낳기만 낳았지 얼굴도 모를 때 이별했다”며 “북에서 낳은 처음이자 마지막 자식이다”고 떠올렸다.
5년 뒤 6·25 전쟁이 일어났고 그는 연합군이 평양에서 철수할 때 학교 동창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했다.
박 할아버지는 “그렇게 가족과 영영 떨어졌다”며 “부모님은 어느 날에 돌아가셨는지, 어느 선산에 모셨는지 궁금한 건 그뿐”이라고 했다.
그는 전남 담양으로 피난 후 중매로 재혼해서 대구로 와 1남3녀를 낳았다. 이번 상봉 자리에는 아들(59)과 남쪽 큰딸(57)을 데리고 나갈 계획이다. 마찬가지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친구들에게 대신 가서 미안하단 마음도 내비쳤다.
박 할아버지는 “대구에만 이북 출신들이 500여명이 된다”며 “다들 북쪽 가족을 그리워하는데 나만 가게 돼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염라대왕이 오면 쫓아버리고 105살까지 살다가 통일이 되는 것을 보고 눈을 감겠다. 10년 내로는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는 북한의 가족들에게 자신의 손때가 묻은 작은 라디오를 선물하려고 한다.
박 할아버지는 곧 만나게 될 딸 명옥씨에게 “울며 슬퍼하고 싶지 않다”며 “아버지 구실도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만나니 더 이상 바랄게 뭐 있겠노. 반갑다”고 미리 인사를 했다. 동생들에게는 “장남인 나를 대신해 어머니 아버지 모시느라 참 고생 많았다. 고맙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