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고용 촉진 장려금, 고령자 다수 고용 장려금, 임신·출산 여성 고용안정 지원금….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에 이 같은 국가지원금을 주고 있다. 큰 기업은 노무사를 고용해 적극 수령하지만 영세한 기업은 몰라서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받아가지 않은 지원금은 3년 뒤 자동 소멸된다.
이런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고용노동부 5급 ‘과장님’이 동생과 딸 등 친인척 15명을 내세워 기업이 받아야 할 국가지원금을 58억원이나 챙겼다. 그가 노동부 전산망에서 기업·개인 정보 수백만건을 무단 조회하고 약 13만건을 유출해 나랏돈을 빼먹은 5년 동안 노동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정부 전산망에서 개인정보가 포함된 기업정보를 빼돌리고 노무사 자격도 없이 기업의 국가지원금 신청 업무를 대행해 58억원을 챙긴 혐의(개인정보보호법 및 공인노무사법 위반)로 노동부 5급 공무원 최모(58)씨와 최씨의 동생(52)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5일 밝혔다. 범행에 가담한 최씨의 딸(29) 등 친지 15명을 같은 혐의로, 최씨를 통해 지원금을 부정 수급한 업체 대표 3명은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노동부의 한 지방청 정보관리부서 과장인 최씨는 2008년 8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고용정보시스템에 접속해 국가지원금 관련 정보 800만건을 무단 조회했다. 이 중 개인정보가 포함된 12만8000여건을 빼돌렸다. 고용정보시스템 관리 업무를 담당한 터라 자유롭게 정보를 조회할 수 있었다.
최씨는 가족과 친지 명의로 5개 노무법인과 비영리법인을 설립하고 ‘영업사원’들을 고용했다. 영업사원들은 최씨가 노동부에서 빼낸 정보를 이용해 국가지원금 수령 자격을 갖춘 소기업들을 찾아다녔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게 해주겠다”며 접근해 노무사 자격도 없이 5년간 4800여개 업체의 지원금 신청 업무를 대행했다.
최씨의 영업사원들을 통해 신청·지급된 국가지원금은 5년간 190억원이다. 최씨는 ‘대행 수수료’ 명목으로 지원금의 30%, 총 58억원을 업체에서 받아 챙겼다. 기업의 일자리 창출에 사용돼야 할 돈이 노동부 과장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이다. 최씨는 58억원 중 20억원가량을 법인 사무실 분양금으로 지불하고 1500여만원은 개인 경조사비, 저서 출판비 등으로 사용했다.
경찰은 “최씨가 불법 수령한 돈을 여러 계좌로 분산해 이체한 터라 자금세탁 의혹도 있다”며 “최씨를 통해 유출된 개인정보와 국고 피해의 정확한 규모 및 사용처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