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염전밭’ 강제 노역 일꾼들, 드라마틱한 탈출기

‘지옥같은 염전밭’ 강제 노역 일꾼들, 드라마틱한 탈출기

기사승인 2014-02-06 20:28:01
[쿠키 사회] “이런 데서 언제까지 노숙할 겁니까. 광주에 가서 일하면 돈도 주고 밥도 먹여주고 잠 잘 곳도 있다니까요? 담배도 사줄 테니 같이 갑시다.”

카드 빚 부담을 못 이기고 집을 나와 노숙 생활을 한 지 12년. 안경 없이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 5급의 김모(40)씨에게 낯선 남자의 말은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직업소개업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모(63)씨와 그의 동료는 서울 영등포역 노숙자 무료급식소를 떠돌던 김씨를 그렇게 구슬렸다. 3개월간 일하며 월급 80만원을 받기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김씨는 2012년 7월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김씨가 도착한 곳은 광주가 아닌 전남 목포였다. 이튿날 아침 김씨는 전남 신안군 외딴 섬에서 염전을 하는 홍모(48)씨에게 몸값 100만원에 팔렸다.

홍씨의 염전에선 채모(48)씨도 강제 노역을 하고 있었다. 지적장애인인 채씨는 대전에서 건설 일을 하며 누나와 살던 2008년 11월, 직업소개업자 고모(70)씨를 만났다.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기억력도 뚜렷하지 않은 그는 “더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며 밥을 사주던 고씨 말만 믿고 목포로 내려갔다. 홍씨는 몸값 30만원을 지불하고 채씨를 염전으로 데려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진 6000평 소금밭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은 소금이 생산되는 3~10월에는 오전 4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염전에서 일했다. 다른 계절에는 농사나 각종 공사에 동원됐다. 녹초가 되도록 일했지만 홍씨는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쇠파이프나 각목으로 두 사람을 폭행했다. 다리를 다친 채씨는 치료도 받지 못하고 절룩거리며 고된 노동을 했다.

근로계약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임금도 없었다. 5년 넘게 일한 채씨도, 2년 가까이 일한 김씨도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했다. 자재창고를 개조해 만든 4평 남짓한 방에는 지난해 11월부터 난방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얇은 티셔츠와 점퍼, 구멍 난 양말과 여름 신발로 버티기엔 겨울이 너무 춥고 길었다.

2012년부터 세 차례 시도했던 탈출은 번번이 홍씨 등의 감시에 가로막혔다. 실패 후 되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구타와 “도망치면 칼침 놓겠다”는 협박이었다. 고민 끝에 이들은 묘안을 냈다. 김씨는 한 동안 순순히 일만 하며 홍씨 비위를 맞추면서 밤이면 부엌에서 몰래 빼돌린 펜으로 편지를 썼다. 어머니에게 보낼 편지에는 “찾아와 해결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달 13일 마침내 기회가 왔다. 이들을 신뢰하게 된 홍씨가 “읍내에 나가 이발을 하라”고 두 사람을 내보냈고 김씨는 사람들 눈을 피해 우체국으로 달려가 품안의 편지를 부쳤다.

다음날 편지는 아들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 배모(66)씨에게 전해졌다. 배씨로부터 신고를 받은 서울 구로경찰서 실종수사팀은 지난달 24일 목포로 내려갔다. 경찰은 소금구매업자로 위장해 마을을 탐문했고 김씨를 찾아냈다.

채씨는 경찰이 김씨를 구출할 당시에는 홍씨가 무서워 “자진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진술해 구조되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은 전산망을 뒤졌고 2008년 7월 채씨 실종신고가 접수된 사실을 확인했다. 채씨도 28일 구출됐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영리목적 약취·유인 혐의로 고씨와 염전주 홍씨를 입건하고 달아난 무허가 직업소개업자 이씨와 신원미상 동료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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