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침대에 실려서라도… 60여년만의 만남에 설레는 가족들

간이침대에 실려서라도… 60여년만의 만남에 설레는 가족들

기사승인 2014-02-19 20:55:00
[쿠키 정치] 누구 하나 애절하지 않은 사연이 없었다. 흰머리가 성성한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은 저마다 생이별한 동생, 태중에 있던 아들, 세상을 떠난 혈육이 남긴 새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19일 강원도 속초 한화콘도에 모였다. 60여년을 기다린 이들에게 주어진 상봉 시간은 2박3일이다.

상봉자 중 최고령자인 김성윤(96) 할머니는 친동생 김석려(81)씨와 사촌, 조카를 만난다. 김 할머니는 해방 후 북한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1946년 신의주에서 남편과 함께 남쪽으로 왔다. 당시 김 할머니의 부친은 자녀 6남매 중 김 할머니와 남동생 2명만 남쪽으로 내려 보냈다. 이번에 만나는 여동생 김씨 등 딸 3명은 너무 어려 신의주에 남겨 둔 것이다. 그때 헤어졌던 어린 여동생을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건강 때문에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던 할머니는 동생을 보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속초로 왔다. 김 할머니는 동생에게 줄 선물로 겨울옷을 준비했다. 김 할머니의 남편은 앞서 1983년 이산가족 상봉 당시 동생을 만났다.

1차 이산가족 상봉단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김섬경(91) 할아버지는 수액을 매달고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 집결지인 속초 한화콘도에 들어섰다. 지난 18일 하루 일찍 속초에 도착한 김 할아버지는 감기증세를 보여 쓰러졌다. 김 할아버지는 “아무리 아파도 금강산에 가서 아들과 딸을 만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황해도 출신인 강능환(93) 할아버지는 헤어질 당시 태중에 있던 아들 정국씨를 만난다. 그는 63년 전 1·4 후퇴 때 결혼 4개월이던 아내와 생이별했다. 당시엔 아내가 임신 중인 사실조차 몰랐다. 자신에게 60세가 넘은 아들이 있다는 것을 이산가족 신청 과정에서야 처음 알게 됐다. 아내는 헤어질 당시 28세 정도로 기억하는데 이미 세상을 떠났다. 강 할아버지는 아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아들이 나를 얼마나 닮았을지 궁금하다”며 “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알고 싶다. 아내 이름도 물어보고 과거를 다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 할아버지와 함께 남쪽으로 피난 온 큰 형은 고향을 그리워하다 100세가 되던 해 눈을 감았다. 강 할아버지는 처제와 조카도 만날 예정이다.

백관수(91) 할아버지는 아내와 아들을 찾길 원했지만 둘 다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헤어질 당시 3세였던 아들은 손자를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떴다. 백 할아버지는 “나만 남한에서 편하게 산 것 같아 손자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손자가 원망하는 눈으로 나를 볼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백 할아버지는 예전 중국에서 사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들을 찾아준다고 해 브로커들에게 돈을 전달했다가 허탕을 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이날 등록시간보다 5시간이나 앞선 오전 10시 30분쯤 이산가족 중 가장 먼저 집결 장소에 도착했다.

김철림(95) 할아버지는 아들과 손자를 함께 만난다. 함경남도 안변 출신인 김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인민군에 징집됐다. 1·4 후퇴 때 전쟁포로가 돼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이후 김 할아버지가 남한에 남기로 선택하면서 이산가족이 됐다. “가족사진조차 한 장 가지고 오지 못했다”며 가슴을 치던 김 할아버지는 아들과 손자를 볼 생각에 잠을 설쳤다.

김명복(66)씨는 이번에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언장을 갖고 왔다. 이번에 금강산에서 만나는 누나 김명자(68)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버지는 큰 딸 명자씨를 북한에 두고 온 한을 안고 돌아가셨다. 유언장에는 “내가 죽더라도 누가 명자를 꼭 찾아라”는 내용이 담겼다.

상봉 대상자들의 두 손에는 저마다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가족에게 건넬 선물이 잔뜩 들렸다. 궂은 날씨에 쇠약해진 건강 때문에 이동용 간이침대에 의지한 상봉자들도 여럿 보였다. 긴 세월에 머리는 희어지고 얼굴은 주름졌지만 마음은 헤어질 당시 안타까움 그대로였다. 혹시나 긴 세월 탓에 혈육을 알아보진 못할까하는 근심은 잠시 미뤄뒀다.

이런 가운데 고령에 건강 악화로 상봉을 끝내 포기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18일에 이어 이날도 포기 의사를 밝힌 이산가족이 나와 상봉 대상자는 총 82명으로 줄었다.

속초=공동취재단,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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