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꽃과 러브샷···체제 발언에 서먹하기도=외금강호텔에서 오전 9시부터 시작된 개별상봉에서 상봉 대상자들은 준비했던 선물을 주고받으며 지나온 세월 이야기에 푹 빠졌다. 남측 가족들은 주로 생필품과 의약품, 내의, 방한복, 초코파이 등을 건넸고 북측 가족들은 대부분 전통술과 테이블보를 선물로 내놨다.
김용자(68·여)씨는 최근 숨진 어머니 서정숙씨를 대신해 어릴 적 헤어진 동생 영실(67·여)씨를 만났다. 원래는 어머니 서씨가 상봉 대상자였지만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뒤 갑자기 심장병으로 숨을 거뒀다. 김씨는 “생전 어머니는 ‘우리 영실이 한번 보고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면서 “(영혼이라도)아마 어머니가 같이 오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단체상봉에서 동생에게 어머니 영정사진을 보여주며 “엄마, 얘가 영실이에요, 잘 보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세린(85)씨는 여동생 영숙(81)씨와 조카 김기복(51)씨를 만나 형제들이 북한에서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뿌듯했다. 김씨는 “(북측의) 남동생이 3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에 안타까웠지만, 해주 의과대를 나와 중앙의료원 같은 곳에서 내과 과장을 했다고 한다”며 동생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개별상봉에서 일부 북측 가족들이 “수령님이 다 해주셨다”는 등 북한 체제에 대한 선전성 발언을 하면서 서먹한 순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상봉에 이어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오찬에서도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납북어부 형제인 박양수(58)·양곤(52)씨는 중식 자리에서 취재진의 권유에 팔을 걸고 ‘러브샷’을 했다. 북측의 형 양수씨가 ‘러브샷’의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해하자 동생 양곤씨가 팔을 걸고 방법을 알려줬다. 양곤씨는 취재진에게 “이번에 몸이 안 좋으셔서 같이 오시지 못한 누님이 있다”며 “형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실 수 있게끔, 우리 형님 모습 많이 찍어서 보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구급차 상봉 뒤 때 이른 작별=건강 탓에 구급차 상봉을 했던 홍신자(84·여)씨와 김섬경(91)씨는 이날 개별상봉을 마치고 먼저 남쪽으로 내려왔다.
홍씨는 개별상봉 뒤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게 “동생을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 안타깝고 슬프기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씨의 여동생 영옥(82)씨는 마지막으로 구급차에서 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언니, 나 기쁜 마음으로 간다. 아무 걱정하지마”라며 울먹였다.
김씨는 개별상봉에서 북측 아들·딸에게 치약, 비누 등 생필품을 건넸다. 아들 진황씨가 “아버지 여한이 없으시죠?”라고 묻자 김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북측 가족들이 북쪽에 선산이 있고 일가족들이 가까이 살고 있다고 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화장해서 유골로 모시다가 통일되면 선산으로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후 구급차에서 작별하면서 북측의 딸 춘순(67)씨는 “아버지 돌아가시지 말고 통일되면 만나요”라며 마지막일지도 모를 인사를 건넸다.
개별상봉을 마친 홍씨와 김씨를 태운 구급차는 낮 12시30분쯤 금강산을 출발한 뒤 군사분계선을 넘어 동해선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했다.
◇북측 관계자, “김연아 선수 금메달 땄습니까”=상봉행사 진행을 위해 나온 북측 관계자들은 남측 기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 안내요원은 “김연아 선수 금메달 땄습니까”라고 물은 뒤, 은메달을 땄다는 대답을 듣고는 “은메달도 대단한 거지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남측 언론 보도에 불만이 많은 듯 “남한 정부는 왜 언론을 잘 다스리지 못하느냐” “남측 기자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특히 쿠키뉴스 등 인터넷 언론의 이념성향이나 종합편성채널에 대해서도 질문하는 등 남측 언론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민감한 질문에는 냉정하게 답을 하기도 했다. 북측의 한 인사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 묻자 “천안함 사건은 진상규명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 진상 조사단에 북측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강산호텔의 한 직원은 장성택 처형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게 “서로 곤란한 질문은 하지 맙시다”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