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질병과 백신] 조류독감,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전염병이 될 수 있을까

[김단비 기자의 질병과 백신] 조류독감,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전염병이 될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14-02-25 08:21:00
바이러스가 종간장벽을 넘어 또 다른 종에게 전파될 때, 파국적인 재앙이 된다

[쿠키 건강] 구제역은 소와 돼지, 염소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게만 발생하는 질병이다. 사람은 구제역에 걸리지 않는다. 이를 두고 ‘종간장벽’이라고 부른다. 종간장벽은 각종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의 재앙을 막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환경파괴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 지나친 과학만능주의가 굳건하던 종간장벽을 서서히 허물고 있다.

종간장벽을 무너뜨리고 나타난 ‘변종 바이러스’의 특징은 독하다는 것이다. 전염성이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치사율도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종 플루(H1N1)’다. 2009년, 멕시코에서 발발한 신종 플루(H1N1)는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감염시켰다.

신종 플루(H1N1)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의 돌연변이체다. 돼지만 감염되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이 돼지 몸속으로 들어온 또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와 뒤섞여 사람 간에도 전염이 가능한 형태의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은 유전자 재편성(reassortment)라고 부른다.

◇조류독감, 인류전염병이 될 수 있을까

신종 플루는 유전자 재편성(reassortment)이라는 자연발생적 돌연변이를 통해 ‘사람 간 전파 능력’을 갖게 됐다. 단, 유전자 재편성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공통적으로 감염될 수 있는 중간개체가 필요하다. 신종 플루를 만들어낸 중간개체는 돼지였다. 하지만 인간도 중간개체가 될 수 있다. 조류독감의 사람감염 사례가 해마다 보고 되고 있으며 신종 플루도 크게 유행하고 있어 ‘동시감염’이 가능하다. 사람 몸속에서 조류독감(H5N1)과 신종 플루(H1N1)이 만나 유전자 재편성이 일어나면 조류독감은 신종 플루의 전파력을 획득해 사람 간에 전이가 가능한 형태로 탈바꿈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결과가 있다. 2012년 5월 2일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보면 족제비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H5N1)가 감염시키고 어떻게 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반복 감염된 족제비 폐에서 같은 종끼리도 전파가 가능하도록 유전자 변이가 일어났다. 이에 대해 박만성 한림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H5N1은 일반 감기바이러스와 달리 사람 폐에서 감염이 이뤄지는데 코나 목 등 상기도에서 감염되도록 아미노산 변이가 일어나면 신종플루와 동일한 전파력을 갖게 되어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의자 바이러스(viral suspect)’ 추척하다 보면 팬데믹 막을 수 있어

신종 플루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신속하게 백신이 만들어졌다. 2010년 이후부터 맞은 독감 예방접종은 일반 독감뿐 아니라 신종 플루(H1N1)에 대한 면역력도 갖도록 디자인돼있다. 이로 인해 발생초기보다 사망자 수나 전파속도는 매우 줄었다. 하지만 신종 플루의 공포가 여전한 이유는 해마다 조금씩 돌연변이하는 바이러스의 성질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듬해 겨울에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돌연변이 모델을 예측하고 백신을 제조하는 데 사용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제안한다.

신종 플루(H1N1)는 전파력은 강하지만 병원성은 낮은 편이다. 치사율이 1퍼센트 미만으로 엄청난 감염자 수에 비해 사망자 수는 매우 적다. 반면 조류독감(H5N1)의 치사율은 60퍼센트 이상이다. 조류독감의 높은 치사율에 사람 간 전파능력이 더해진다면 역사상 가장 끔찍한 팬데믹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박만성 교수는 “현재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바이러스 변이를 통해 전파력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은 H5N1 바이러스주를 이용해 모형 백신(mock-up vaccine)을 개발 중에 있다”며 “향후 실질적으로 조류독감이 재앙적인 대유행을 일으킬 시 이 바이러스주를 이용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류독감(H5N1)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종간장벽을 무너뜨리고 치명적인 전파력을 갖는 바이러스로 탈바꿈하기 전에 바이러스의 역동성에 주목해서 미래의 바이러스의 형태를 미리 알아내는 연구가 선행돼야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미래의 바이러스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예전부터 돌연변이 가능성에 대해 늘 의심해오던 ‘용의자 바이러스(viral suspect)’란 사실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김단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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