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 유제민 판사는 최근 발간된 사법연수원 논문집에 실린 ‘법관의 양형판단과 국민 여론의 관계에 관한 법사회학적 시론(試論)’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대기업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여론은 2006년 2월 두산그룹 사건 판결을 기점으로 비판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등은 회삿돈 28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판결 이후 언론을 중심으로 ‘재벌 봐주기 논란’이 촉발됐고 이용훈 대법원장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유 판사는 법관들이 여론을 의식해 ‘국가 경제 영향’ 등을 양형 참작 사유로 언급하지 않게 됐다고 해석했다. 법원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1심에서 “국외 수출 증대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계열사 자금 횡령 혐의를 받은 최태원 SK 회장의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월 “경제 영향을 고려해 피고인의 책임을 경감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유 판사는 “최근 판결은 재벌 총수라고 해도 예외 없이 경제 범죄에 관한 양형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음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며 “양형 기준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여론이 양형 판단에 중요한 요소로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내리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 1부는 27일 오전 10시 최 회장에 대한 선고 공판을 진행한다. 최 회장은 1·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