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꾸야여관(6)] 샅까지 차오른 물길을 헤치는 운이…탕! 총소리였다

[소설 기꾸야여관(6)] 샅까지 차오른 물길을 헤치는 운이…탕! 총소리였다

기사승인 2014-03-03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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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기꾸야여관’(6)]

# 1942년 와탄강 너머 칠산 바다

샅까지 차오른 물길을 헤치는 운이

석양이 떨어졌다. 바다 멀리 넘어간 석양이 마지막 불꽃을 일으키느라 있는 힘을 다해 빛을 밀어냈고, 그 빛은 파도에 휩쓸려 칠산바다 거쳐 법성포구까지 가늘게 달려왔다. 그리고 대덕산에 막혀 촛불 꺼지듯 숨을 다했다.

밀물도 어느새 갯벌 길을 채워버렸다. 운이는 마음이 급해져 갯벌 길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책보가 등허리에서 들썩이며 뛰어가는 박자를 맞추기 힘들었으나 이것저것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내가 괜히 선생님 얼굴 보느라 그랬어.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해. 이렇게 물때를 못 맞추는데…밥통 같은 짓을 했어.’

숨을 헐떡이며 물가에 다다랐을 때 산자락과 뻘이 만나는 길은 이미 잠겨 있었다. 뻘과 산 경계에 사는 도둑게들도 서둘러 해송 나무 틈 사이로 들어갔다. 밤에 부엌에 들어와 밥을 훔쳐 먹는다고 해서 도둑게로 불렸다. 더러 운이네 아궁이에 까지 들어가 타 죽는 미련한 도둑게도 있었다.

운이도 도독게가 정지 바닥에 들어와 제 풀에 놀라 붉은 집게발을 벌리면 잔솔가지로 쓸어 뒷간으로 보내줬다. 약삭빠른 놈은 땔감으로 쌓아 놓은 잔솔가지 더미로 내뺐다.

‘도둑게처럼 쓸려 가 집에 갈 수만 있다면…’

운이의 마음은 그만큼 급했다.

그녀는 짚신과 버선을 벗어 들었다. 그리고 손에 쥔 굴비두름에 짚신을 매달았다. 검정치마를 올리자 정강이와 무릎이 드러났다. 윤기 흐르는 정강이였다.

“어이쿠 차가워라.”

봄이 됐다고는 하나 바닷물은 차가웠다. 흑산도 어디쯤의 깊고 먼 바닷물이 와탄강까지 밀려온 듯 했다. 물이 종아리를 건드리며 잔물결로 간질였다. 물 밑에선 잔 물고기들이 종아리에 입질을 하는지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갈수록 물은 깊어졌다. 무릎 아래였던 것이 어느 새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이를 어째, 돌아갈까?’

운이는 뒤를 돌아봤다. 갯벌 길 시작점을 알리던 바위가 탁한 바닷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진퇴양난이었다. 멀리 먹구름까지 몰려오고 있었다. 운이는 거의 울상이 됐다.

“아무도 없어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저 앞 튀어나온 산자락 뒤에 혹시 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솔바람 소리만 거셀 뿐이었다. 대덕산 독수리 한 마리가 산 경계에서 빙빙 돌았다. 산토끼라도 본 모양이었다.

운이는 어떻게든 이 길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되돌아 갈 경우 숲을 헤치며 산길을 타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밤중은 되어야 이를 것이다. 무엇보다 무서워서 자신이 없었다.

그때였다.

“탕!”

총소리였다. 어느 방향에선지는 알 수 없었다. 운이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다 개흙에 미끄러져 반쯤 넘어지고 말았다. 가래단속곳과 치마가 거의 젖어 들었다. 굴비 두름 반쯤이 물에 잠겼다. 책보가 아니기에 다행이었다.

“탕!”

또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뒤쪽 은선암 인근이 아닐까 싶었다. 사냥꾼일 것이다.

‘대처 사는 일본 놈들이 대덕산에서 사냥질을 한다는구만유. 아씨도 조심하세유.’

퍼뜩 자신의 집에서 세경 살이 하는 동영이 한 말이 떠올랐다.

운이는 일본 사냥꾼들이 뒤쫓아 오는 것 같아 이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 됐다. 샅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탕! 탕!”

연이은 총성이 대덕산 골에 튕겨 강 건너 산을 때리고 메아리가 되어 작은 소리로 되돌아 왔다. 운이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까보다 총소리가 가까워 졌다는 것을 느꼈다. (계속)

작가의 말

자운영꽃 같은 운이. 서해안 솔바람을 들이마시며 자란 운이는 읍내 기꾸야여관에서 일을 하게 된다. 조선 3대 조운창(漕運倉)이었던 읍내 포구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수탈과 환락의 공간으로 변한다. 운이는 그곳에서 정인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일본 교토로 떠난다.
기꾸야여관에서 만난 세이게이라는 청년은 늘 운이를 향해 순애하나…. 그리고 해방과 전쟁, 가난과 혼란, 독재와 저항 속에서 운이의 삶은 조선소나무처럼 휘어지나 잉걸을 남기고 수북한 솔가지를 떨어뜨린다. 평생 정인을 그리워하며 바닷가 해송 한 그루가 되어 생을 마감한 운이. 일본, 오키나와, 동남아, 중국을 무대로 한 ‘해양대륙 소설’.

전정희 jhjeon2@naver.com/ 국민일보 문화부장, 종교기획부장, 종교부장, 인터넷뉴스부장 등 역임. 인터넷 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을 국민일보 쿠키뉴스에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민족주의자의 죽음’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공저), ‘TV에 반하다’ ‘아름다운 전원교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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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기자
jhjeon2@naver.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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