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 조력자가 중국 공문서 관인·위조 정황 포착… 檢 “진술 확보했다”

[단독] 국정원 조력자가 중국 공문서 관인·위조 정황 포착… 檢 “진술 확보했다”

기사승인 2014-03-06 06:01:00

[쿠키 사회]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재판에 검찰이 증거로 제출했던 중국 공문서(3건) 중 하나를 국가정보원의 조선족 협력자가 임의로 작성해 관인(官印)까지 직접 찍은 정황을 검찰 진상조사팀이 포착했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들이 국가보안법(무고·날조) 위반 혐의로 형사 처벌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진상조사팀은 피고인 유우성(34)씨를 수사한 국정원 대공수사팀 요원들과 조선족 정보원 A씨 등을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 검찰은 A씨의 중국 공문서 위조에 관한 추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강제 수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검찰 등의 말을 종합하면 국정원 직원은 지난해 12월 중순 인천에서 중국 국적의 A씨를 접촉해 “유씨 변호인이 법원에 낸 문서를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유씨 변호인은 같은 달 6일 항소심 공판 때 중국 싼허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소)에서 발급받은 ‘정황설명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이 설명서는 유씨가 2006년 5월 27일과 6월 10일 두 차례 북한에서 중국으로 왔다는 기록(入·入)이 전산 오류에 따른 착오라는 내용이었다.

A씨는 국정원 직원의 요구에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 뒤 싼허변방검사참 명의를 도용해 ‘정황설명서에 대한 회신’이란 문서를 작성하고, 현지인으로부터 중국 기관 관인을 구해 날인까지 한 것으로 진상조사팀은 파악하고 있다. 문서 자체가 중국 기관과 상관없이 외부에서 위조됐을 가능성이 짙다는 의미다. 국정원과 변호인이 각각 싼허변방검사참에서 발급받았다는 공문서는 이미 지난달 28일 ‘관인이 서로 다르다’는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 감정 결과가 나왔다.

국정원 조력자가 중국 공문서·관인 위조 정황

국가정보원 조선족 협력자가 중국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 명의의 공문서를 직접 조작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국정원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이 문서는 피고인 유우성(34)씨 측 증거를 반박하려고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특히 검찰의 나머지 증거들과도 내용상 연결돼 있어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 공소 유지 자체가 어려워진다. 검찰 진상조사팀이 위조 증거의 구체적인 생산 경위를 파악하게 된 만큼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정원, 조선족 협력자 중국에 파견=국정원은 지난해 12월 6일 항소심 3차 공판 이후 조선족 A씨를 접촉해 서류 확보를 요구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 A씨는 중국 옌지(延吉)시로 건너간 뒤 ‘12월 13일’ 문서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싼허변방검사참 관인(官印)까지 날인했다. 검찰 진상조사팀은 A씨가 싼허변방검사참에 자료 요구 자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진상조사팀은 특히 A씨가 공식 문서임을 가장하기 위해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서류를 위조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실제 이 문서는 나흘 뒤인 지난해 12월 17일 국정원 직원인 선양 주재 이모 영사에게 건네졌다. 이 영사는 이 문건을 번역해 영사 인증을 첨부했고 국정원 직원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백상 선양 총영사도 지난달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중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담당 영사가 번역해서 그 내용이 틀림없다고 확인한 것”이라며 “공관 인증을 받아 검찰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제시한 출·입경 기록의 위조 의혹이 최초 제기된 때였다. 유씨 측은 3차 공판에서 옌볜조선족자치주공안국이 발급한 출·입경 기록과 “연속으로 북한에서 중국으로 입국한 기록은 컴퓨터 시스템 오류”라는 내용의 싼허변방검사참 정황설명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유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돼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검찰 측 공소사실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국정원이 움직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검찰은 싼허변방검사참에 관련 문서를 요구한 적이 없다. 국정원이 A씨에게 문서 위조를 직접 지시했거나 A씨가 문서를 위조한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한 채 검찰에 제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흔들리는 국정원 변명, 위기 몰린 검찰 공소 유지=국정원은 지난달 28일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DFC)에서 ‘싼허변방검사참으로부터 국정원과 변호인이 각각 받은 문건의 관인이 다르다’는 감정 결과가 나오자 “문건을 최초 입수한 우리 관계자가 위조된 것이 아님을 밝히겠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현지 요원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입수한 문서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의 ‘서류 확보’ 요청을 받은 A씨가 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의심되면서 이런 해명은 힘을 잃게 됐다. ‘중국 정부가 발급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위조라고 언급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약해졌다.

위조 정황이 드러난 싼허변방검사참 문서는 중국 당국이 위조됐다고 확인한 허룽시 발급 ‘출·입경 기록’(검찰 측 문서)과 ‘발급 사실 확인서’를 뒷받침하기 위한 문서다. 때문에 나머지 문서 역시 위조 가능성이 높아져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도 커졌다.

공소 유지를 담당한 검찰의 책임론도 부각된다. 그러나 검찰은 “국정원이 인계한 문서를 그대로 제출했다”고 해명하고, 국정원은 “A씨가 확실하다고 넘긴 문서를 인계한 것”이라고 서로 책임을 떠넘길 공산이 크다. 진상조사팀을 지휘하고 있는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은 “수사는 항상 진행형 상태이며 실체 접근을 위해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웅빈 정현수 지호일 문동성 기자 blue51@kmib.co.kr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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