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휴일인 지난 9일 오후 늦게 ‘국정원 발표문’을 내고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국정원은 “위조 사실을 몰랐다”는 기조 입장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이 이번 사안에 있어 진상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그 수준에 맞춘 해명을 해왔다는 점에서 발표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많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자체 조사를 통해 조작 사실과 경위 등을 상당부분 확인했지만, 외부 협조자가 처벌받는 선에서 마무리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피고인 유우성(34)씨 혐의 입증을 위한 중국 측 증거 수집은 국정원 본부가 직접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싼허변방검사참 명의의 공문서를 위조한 협조자 김모(61)씨 역시 대공수사팀 조정관(Handler)인 김모 과장(일명 ‘김 사장’)의 문서 입수 요청에 따라 움직였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문서 위조에 쓰인 비용과 사례금도 국정원 예산으로 지원받았다. 국정원이 구한 중국 공문서에 영사확인서를 써준 선양영사관 이모 영사는 검찰 조사에서 “본부의 독촉이 있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지난해 8월 유씨 1심 재판에서 간첩 혐의 무죄가 선고된 이후 항소심 재판부에 새롭게 제출한 증거가 진위 공방에 휩싸이자, 국정원 자료가 진본임을 다시 입증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본부 대공수사팀이 조직적으로 추가 증거 확보에 나섰을 개연성이 높다.
검찰은 이런 정황 등을 근거로 대공수사팀 직원들과 지휘라인에 있던 상급자들의 개입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만간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직원들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원 수뇌부 역시 지난해 12월 유씨의 항소심 공판에서 변호인 측이 처음 증거 위조 의혹을 제기했을 때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검찰은 법정에서 공방이 벌어진 직후 수사 및 공소유지에 참여했던 국정원 직원들을 불러 문서 입수 경위 등을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위험 신호’가 있었음에도 국정원은 보다 확실한 검증 작업 없이 외부 협조자가 입수한 싼허변방검사참 공문서 등을 추가로 제출했다.
결국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가 지난달 14일 한국 법원에 ‘검사가 제출한 문서 3건은 모두 위조’라는 답변을 보내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협조자 김씨는 유서에 ‘국정원은 국조원(국가조작원)’이라는 말까지 했다. 남 원장 등 수뇌부로서는 위조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상황 판단력 부재 등 무능함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