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즈 대령은 1953년 6월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김화지구 전투의 ‘해리 전초기지(Outpost Harry) 사수 작전’에 배치됐다. 당시 병장이었던 그는 중공군의 포격에 군복이 불타고 얼굴에 화상을 입는 등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동료들을 구하고 60여명의 적군을 사살하는 등 영웅적인 전공을 세웠다. 특히 동료들과 함께 아군 진지의 벙커와 벙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공격함으로써 미군의 숫자가 실제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적군을 속이는 지략도 발휘했다.
이듬해인 54년 명예훈장 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공은 우리 부대에게 있다”면서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화제가 됐다. 이후 ‘그린베레’로 불리는 육군특수부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뒤 81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앨라배마주 앨버트빌에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이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정육점에서 일하다가 가족의 생계를 돕겠다며 육군에 입대했다. 처음에는 몸무게가 54㎏밖에 되지 않아 입대를 거부당하기도 했던 그는 제대 직전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진 재입대해서 한국으로 향했고, 김화지구 전투에서 사선을 넘나들었다고 WP는 전했다. 미국 영화사 DINI는 2010년 전투에 실제 참전했던 밥 베이커씨의 지원으로 ‘기필코 고지를 사수하라: 해리 전초기지 전투’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김화지구 전투를 소개했다.
워싱턴=국민일보 쿠키뉴스 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