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첼레트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법인세율 인상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지난달 11일 임기를 시작하고 20일 만에 공약 이행에 나선 것이다.
세제 개혁 법안은 교육환경 개선 공약과 맞닿아 있다. 기업에서 세금을 더 걷어 무상 대학교육 재원 82억 달러(약 8조7000억원)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현재 20%인 법인세율은 2017년까지 25%로 오른다. 기업이 번 돈을 재투자했을 때 주던 과세 혜택은 사라진다.
무상교육은 지난해 말 대선 당시 최대 쟁점이었다. 학생들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1973~90년) 때 도입된 교육제도가 공교육 몰락과 빈부격차 확대를 불렀다며 2년 넘게 시위를 벌여왔다. 이들의 요구는 무상교육과 공교육 질 개선이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당시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지난해 6월에는 학부모 단체와 교사, 부두·광산·의료 노동자가 연대 파업에 나섰다. 중도좌파 성향의 바첼레트가 대선에서 보수 여당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4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건 이런 민심이 반영된 결과다.
바첼레트가 약속했던 시한(취임 후 100일 내)보다 서둘러 관련 법안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인다면 시민들은 가차 없이 등을 돌릴 수 있다.
세제 개혁 법안은 개인에게 부과하는 최고 소득세율을 기존 40%에서 35%로 낮추는 내용도 담고 있다. 한 달에 1만500달러(약 1111만원) 이상 버는 사람이 혜택을 받는다. 바첼레트는 “자본 소득과 근로 소득 간 공평한 과세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재계는 법인세율 인상 등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첼레트는 건강한 경제는 공정한 사회를 요구한다고 반박한다. 다만 세율 인상 완료 시기는 당초 공약한 2015년보다 2년 늦춰 잡았다.
세제 개혁은 큰 양보 없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여당인 중도좌파연합 누에바 마요리아(새로운 다수)가 상하원 모두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칠레대학의 귈레르모 올츠만 연구원은 “칠레 각 분야에서 피노체트 시절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금 문제는 정치적, 이념적, 대외 홍보적 파급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