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1억3000만 달러짜리’ 선구안이었다. ‘특급 리드오프’ 추신수(32·텍사스)가 ‘특급 마무리’ 조나단 파펠본에게 투수 인생 처음으로 맛보는 상처를 안겼다.
추신수는 3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파크서 열린 2014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와의 개막 3연전 마지막 경기에 1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전, 9회말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왜 추신수가 초대형 FA 계약의 가치가 있는 선수인지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3대3 동점에 1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추신수는 파펠본이 초구로 던진 떨어지는 변화구에 헛스윙을 했다. 이어 볼을 하나 고른 추신수는 3구째 파울로 2스트라이크 1볼의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렸다. 마지막 이닝 2사 만루 상황에서 삼진아웃의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스트라이크 2볼에서 이날의 백미가 연출됐다. 볼 하나의 여유가 있는 파펠본은 추신수의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가운데로 날아오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졌다. 나무랄 데 없는 예리한 각도였다.
하지만 추신수는 다리만 살짝 움직였을 뿐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다. 밑천이 다 떨어진 파펠본은 결국 홈플레이트에서 한참 벗어난 높은 공을 던졌고 승부는 그대로 끝났다.
파펠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운드를 내려왔고, 추신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팀 동료들과 세리머니를 즐겼다.
리그에서 손꼽히는 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한 승리였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2003년 프로 생활을 시작한 파펠본은 2005년(보스턴 레드삭스)부터 빅리그에서 뛰기 시작했다. 2010년(3.90)을 제외하고는 3점대의 평균자책점조차 기록한 적이 없을 정도로 철벽 투구를 자랑하는 선수다.
특히 35세이브를 올린 2006년에는 0점대(0.9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29세이브, 평균자책점 2.92의 변함없는 활약을 뽐냈다.
필라델피아는 2011년 4년간 총 연봉 5000만달러(약 560억원·옵션 포함 최대 6000만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파펠본을 영입했다. 연봉은 역대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 신기록이다.
마무리 투수에게 끝내기 볼넷 허용은 끝내기 안타보다 더 치욕스런 순간이다. 파펠본이 끝내기 볼넷을 허용한 건 빅리그 마무리 경력 10년 만에 처음이고, 그 상처를 안긴 주인공이 바로 추신수다. 추신수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마도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으로 타점을 올리기는 처음인 것 같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기분은 극과 극이지만 추신수와 파펠본은 서로에게 평생 못 잊을 선수가 된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