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격식파괴'라는 양날의 검

디지털시대 '격식파괴'라는 양날의 검

기사승인 2014-04-13 20:22:01
[쿠키 사회] 최근 유럽 학계에 ‘사르콜로지(Sarkology)’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에 학문(-logy)을 뜻하는 어미를 합성한 단어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된 이유는 이렇다.

그는 2007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된 날 파리 부호들의 호화클럽에서 파티를 즐기며 자축했다. 이후에도 공식석상에서 영부인 카를라 부르니와 키스를 하는 등 공개적으로 스킨십을 드러냈다. 이전 대통령과 판이하게 다른 그의 격식 파괴에 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각종 정치 공세로 혼란스럽다. 정치인들은 140자의 트위터 글로 요란하게 입장을 알리고 처음 등장한 여성 대통령의 SNS에는 지대한 관심이 쏟아진다. 한 순간 생활 깊이 파고든 디지털시대에 권력은 어떤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할까.

뉴미디어 전문가이자 기호학 분야 석학으로 꼽히는 파스칼 라르들리에(51) 프랑스 부르고뉴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한국기호학회 창립 20주년 국제학술대회를 위해 고려대를 찾았다. 그는 지난 1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시대에 권력자의 탈 권위적인 모습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런 모습은 사실 ‘양날의 검’”이라며 “이런 모습의 지속성은 사회의 포용력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라르들리에 교수는 “사르코지가 보여준 자유분방한 이미지는 권위적 대통령에 익숙해 있던 프랑스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는 스포츠와 이성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는 “운동을 즐기며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은 오랫동안 ‘경거망동’이었지만 이제는 휴가철에 수영복 차림의 대통령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으로는 사르코지를 비롯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이 노출한 복잡한 여성 관계마저 격식 파괴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그는 평가했다.

격식 파괴는 국가 정상 간 만남에서도 드러난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악수를 권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모습이 언론에 중계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 태권도의 정권 지르기 동작을 선보였다. 라르들리에 교수는 “최근 국가 정상들은 여성 정치인은 물론 교황의 몸까지 공적인 장소에서 스스럼없이 만져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며 “이러한 ‘터치’의 증가는 그동안 이어져온 위선의 시대를 마감하는 신호라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으로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맞았다. 여성 대통령의 소통 방식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라르들리에 교수는 유럽보다 의례를 중시하고 권위주위가 강한 아시아에서 여성 대통령이 쉽게 권위를 내려놓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한국이 첫 여성 대통령을 맞았지만 유럽에서도 여성 지도자는 남성에 비해 허락되는 자유가 적다. 현실은 여전히 불평등하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서서히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라르들리에 교수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전 부인인 세골렌 루아얄 장관은 결별 후 아이 넷을 데리고도 정치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연애도 즐긴다”며 “새 시대의 남성 리더한테 용인되던 모습들이 장기적으로는 여성 리더에게도 적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런 ‘격식 파괴’를 대중은 낯설어하기도 한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2012년 재선에 실패한 걸 이에 대한 반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라르들리에 교수는 “새로운 기술은 항상 첨단과 전통의 충돌을 야기하고 새로운 현상을 이끌어낸다”며 “어떤 측면에서는 부모와 자녀 등 상징적인 관계를 허물어뜨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정치인의 권위를 벗길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의례에 도전하고 있다. 트위터의 짧은 글에 등장하는 정치인의 말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같은 의례적 언어가 배제되는 탓에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사회 기능 일부의 붕괴를 가져올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그 자리를 채울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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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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