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지난달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를 빙자해 한국 정부를 해킹하겠다고 예고했던 장본인은 해킹을 잘 할 줄 모르는 철부지 중고생들로 드러났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어나니머스를 사칭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 정부기관을 해킹하겠다고 위협하고 정부통합전산센터에 해킹을 시도한 혐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강모(17), 배모(14)군과 대학생 우모(2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6일 밝혔다. 함께 해킹 공격을 준비한 필리핀인 J군(15)을 추적하기 위해 필리핀에 공조수사를 요청해 둔 상태다.

강군은 지난달 1일 한국 정부를 해킹하자며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배군 등을 끌어들였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해킹 예고글을 올린 이들은 지난달 16일에는 유튜브에 해킹 예고 동영상을 띄우기도 했다.

동영상에는 어나니머스 가면을 쓴 외국인이 “한국 정부가 세금을 낭비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국민을 억압해 4월 14일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영어로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동영상 제작을 맡은 배군은 영어로 문장을 입력하면 발음해주는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 음성 파일을 제작한 뒤 이를 온라인에 떠도는 어나니머스 관련 동영상에 덧입혔다. 필리핀인 J군은 배군의 어색한 영어 문장을 ‘교정’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유일하게 해킹 방법을 아는 J군은 지난달 18일 취약점을 확인하기 위해 정부통합전산센터에 등록된 모 기관 홈페이지에 해킹을 시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기관 홈페이지 URL이 ‘~go.kr’이라는 걸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J씨가 ‘go’를 빠뜨리면서 엉뚱한 사이트가 해킹 공격을 받았다.

컴퓨터 관련 학과 졸업을 앞둔 대학생 우씨는 고3인 강군의 ‘지시’대로 외국 사이트에 해킹 관련 홈페이지를 만든 단순 가담 혐의로 입건됐다. SNS 상에서 닉네임으로만 대화해 우씨는 해킹 공모자들이 중고생인 걸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해킹 예고가 언론에 보도되고 어나니머스를 자처하는 다른 이들이 공격을 부인하자 부담을 느껴 다음날 공격 계획을 철회했다. 강군은 “나는 어나니머스가 맞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강군이 범행 동기를 논리적으로 밝히지 못했고 어나니머스는 실체가 불분명한 조직이어서 강군이 실제 그 일원인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