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층 입원실 복도
환자복을 입고 팔에 링거를 꽂은 채로 위모(17)군이 입원실마다 돌아다니며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만나는 친구들에게 매번 “10초만 늦었어도 정말 죽을 뻔했다. 진짜 10초만”이란 말을 되풀이했다. 위군은 16일 오전 11시가 다 돼서 거의 마지막으로 구조됐다.
그는 “친구랑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가 배가 완전히 기울어 벽을 딛고 서게 됐을 때 흘러드는 물을 거슬러 이동하며 대피했다”고 말했다. “내 뒤로도 친구들 30~40명이 있었는데….” 말을 다 마치지 못하더니 “이제 물이 무서워서 씻지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복도에서 전화 통화 중이던 한 학부모는 수화기 너머 상대방에게 “우리 애는 다친 덴 없어. 그런데 충격 때문인지 말을 못해. 계속 울기만 해. 친구들 생각이 나서 감정이 복받치는가봐”라고 했다.
#7층 입원실 ○○○호
양모(17)군의 아버지가 누워 있는 아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사고 때 다리가 어디에 끼어서 다쳤는데 어제보다는 안정된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며 걱정했다. “만날 붙어 다니고 서로 집에 놀러가고 하던 친한 친구 셋이 있어. 사고 날 때 배에서도 같이 있었는데 얘만 혼자 나온 거야. 둘도 없는 친구들인데, 참…. 어제 수면제까지 받아서 먹었는데도 밤새 잠을 설치더라고.”
#11층 휴게실
환자복을 입은 여학생과 사복 차림의 남녀 학생 2명이 앉아서 대화 중이었다. 사복을 입은 두 학생은 병문안을 온 듯했다. 환자복 여학생이 이런 말을 한참 했다.
“1년치 울 거 다 울었어. (구명)보트 잡고 배까지 가서 오래 있었어. 물 속에. 배에서 나랑 ○○랑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확 밀려서 ○○는 구르다가 어디 부딪혔는데 소파가 ○○한테 밀려가서 그 밑에 깔렸어. 정신 못 차리다 애들이 깨워서 겨우 일어났어.”
여학생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다시 말문을 열었다.
“구출 받다가 사람들한테 머리를 밟힌 여자애도 있어. 머리에 피가 고였을까봐 걱정하는 상황이라던데… 난 (배에서 탈출할 때) 그냥 (바다로) 뛰어내렸어. △△랑 손잡고. 넘어진 자판기에 깔린 애도 있었어. 불이 나려는지 연기가 피어올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정전이 되더라.”
그러자 선배인 듯한 남학생이 말했다.
“자꾸 생각하고 감정이입 하면 눈물 쏟아질 거 같아…. 한숨쉬지 말자.”
이날 병원을 찾은 단원고 학생들은 “학교에 1주일간 휴교령이 떨어졌고 2학년 전체가 전학을 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뒤숭숭한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애초 이 병원에 왔던 71명 중 귀가한 건 한 명뿐이다. 응급실에서 치료 중인 6명을 제외하고 입원자 63명(교사 1명 포함)은 대부분 경미한 타박상이지만 사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우려되고 있다.
차상훈 병원장은 언론 브리핑을 갖고 “16일 저녁부터 환자들을 대상으로 X-레이, 혈액, 혈압, 문진 등 검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한창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지속될 가능성이 아주 커서 집중 관찰이 필요하다”면서 “아침식사 때 돌아보니 일부 학생은 울먹이며 친구들 얘기를 했다.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병원 측은 “안정을 찾았다가도 6개월에서 1년 후 외상 후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초기에 집중적인 관찰이 중요하다”며 “부모와 협의해 순차적으로 퇴원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자들의 상태가 호전되면 병원은 가족, 친구들에 대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정신과 치료를 진행하고 이때 환자들 가족, 친구들에 대한 치료도 병행할 계획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전문가를 모집해 생존 학생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조기 발견하고 대처하기 위한 무료상담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훈 이사장은 “학교와 가족 등 전체 구성원을 위한 포괄적 치유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구성되고 장기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9시50분쯤 단원고 2학년 정차웅 권오천 임경빈군의 시신이 목포한국병원에서 안산고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이송됐다. 구급차에서 내린 유족들은 큰 소리로 오열하며 장례식장 안으로 향했다. 안산시 등 관계기관은 이번 사고로 숨진 학생들의 합동분향소 설치 여부를 논의할 방침이다.
안산=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