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침묵이 금이 되려면… "소나기 피하고 보자"는 아니기를"

"[현장기자] 침묵이 금이 되려면… "소나기 피하고 보자"는 아니기를"

기사승인 2014-04-22 18:46:01
[쿠키 정치] 국회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여야 정치인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주장과 비판이 넘쳐나던 곳에서 정적마저 흐른다. 새누리당 정몽준·권은희 의원처럼 ‘말실수를 해서 송구하다’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논평이나 발언으로 자칫 구설수에 오르고 국민적 공분을 사지 않을까 걱정해서다. 당 차원에서도 의원들에게 ‘말조심하라’는 입단속이 내려진 지 오래다. 여야 의원들이 ‘침묵이 금’이라는 오래된 격언을 새삼 가슴에 다시 새기는 모습이다.

국민 대다수도 정치인들이 이번 사고에 대해 입을 여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여야가 그동안 벌여온 막말 경쟁에 대한 염증과 혐오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인의 말로 용기를 얻었다기보다 분노나 혐오를 느낀 경험이 더 많아서다.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드문드문 나온 말들만 봐도 그렇다. ‘북괴에 놀아나는 좌파’ ‘(구조 지연은) 범죄’ 등 실종자 가족의 가슴을 후벼 파고 국민들을 절망케 하는 발언이 툭툭 쏟아졌다. 연예인의 짧은 위로 메시지나 사고를 전하는 방송 진행자의 눈물에는 공감하는 국민들이 그들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입에는 아무런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은 누적된 경험이 낳은 불신이다. 그래서 ‘말로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입을 닫자’는 것은 어찌 보면 정치인으로서 현명한 처신이다.

그럼에도 여야의 침묵에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낙담과 절망을 주는 것도 말이지만 위로나 용기를 주는 것도 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는 말의 예술이다. 온갖 사회적 갈등을 대화와 토론으로, 결국은 말로 조정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제 1책무다. 세월호 사고는 정치권이 말에 관해서는 국민들로부터 낙제점을 받았다는 것을 또렷이 보여준 사례다.

여의도의 침묵도 곧 끝날 것으로 보인다. 이 짧은 침묵이 단순히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나온 선거 전략이거나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보신주의가 아니길 빈다. 정치권이 이번 계기를 말의 엄중함에 대해 돌아보는 수행으로 삼길 바란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침묵은 금이 될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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