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비명이 울리자 아이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한 아이가 재빨리 문을 열 동안 다른 아이는 가스렌지 불을 껐고 또 다른 아이가 전기를 차단했다. 채 30초가 지나지 않아 다섯 아이들은 전부 식탁 밑으로 무사히 숨어들었다. 16㎡ 남짓한 부엌이 리히터규모 6.0 수준으로 요란하게 흔들렸지만 당황하는 아이는 없었다.
지난 8일 오전 10시 서울 광진구 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는 견학 온 서울 수락초등학교 4학년 학생 156명에게 1시간40분 동안 크고 작은 ‘재난’이 펼쳐졌다. 소화기체험관에 아이들이 모이자 박병수(45) 소방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3.3㎏짜리 소화기 하나로 불 끄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라고 묻자 사방에서 “10분” “20분” 하는 천진난만한 대답이 쏟아졌다. 박 소방장이 “12초면 충분하다”고 설명하자 아이들 눈은 휘둥그레졌다. 분말 대신 물이 나오는 소화기 4개를 나눠 든 아이들 앞 멀티비전에 불이 난 가정집 부엌이 그래픽으로 재현됐고 아이들은 화면을 향해 힘껏 물을 뿌렸다.
연기피난체험 시설에서도 아이들은 침착하게 교육을 마쳤다. 박 소방장으로부터 “고개를 숙이고 헝겊을 적셔서 최대한 호흡기를 가려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들은 뒤 아이들은 직경 70㎝ 미끄럼틀을 통과해 체험관에 입장했다. 인체에 무해한 사탕수수로 만들었다지만 자욱한 연기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비상구’ 신호등은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실제 상황처럼 훈련에 임한 아이들이 자세를 낮추고 서로의 등에 한 손을 얹은 채 다른 손으론 호흡기를 막으며 무사히 탈출하는 데 3분쯤 걸렸다. “와 정말 불나면 무섭겠다.” “조심해야겠다.” 아이들이 목소리 높여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풍수해체험관에선 어른도 중심을 잡기 힘든 초속 30m 강풍이 몰아쳤다. 악명 높았던 태풍 ‘덴빈’과 ‘볼라벤’이 초속 40m였던 것을 감안하면 아이들이 견디기 쉽지 않은 바람이다. 용감한 아이 20명만 체험하겠다고 나섰다. 미리 안경이나 머리띠를 벗은 아이들은 박 소방장의 뒤를 침착하게 따랐다. 기차놀이 하듯 앞사람 옷을 잡고 수그린 채 입장한 아이들에게 교육장 앞뒤 에어컨에서 눈 뜨기조차 힘든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맞선 아이들은 차분하게 높이 1m, 길이 1.5m 철제 안전봉과 옆사람에 의지해 체험관을 빠져나갔다. 이날 수락초 4학년 학생들은 심폐소생술과 자동제세동기 사용을 포함해 모든 체험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갔다.
전문가들은 안전사고에 대처하기 위해선 이론이 아닌 실제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며 ‘체험교육’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같은 안전체험관은 전국에 단 5곳뿐이다. 서울에 광나루와 서울보라매안전체험관이 있고 지방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전북(119안전체험관), 강원도(태백 365세이프타운)뿐이다. 해양사고에 대비한 체험관은 아예 없다. 50여개 안전체험관이 운영되는 일본과 격차가 크다.
소방방재청이 운영하는 체험관 네 곳의 체험인원은 해마다 증가세다. 2011년 41만5714명이던 방문객은 지난해 53만4987명으로 늘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해양사고에 대한 안전체험관은 별도의 수중시설이 필요해 일반 체험관에서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며 “체험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시설과 교육 프로그램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박요진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