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연기력과 개성이 돋보여 주연보다 더 주목받는 조연을 의미합니다. 직역 그대로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죠.
그런데 6·4 지방선거 투표일에 ‘신 스틸러’가 등장했습니다. 적어도 투표가 끝날 때까지 인터넷과 SNS에서는 서울시장에 출마한 박원순·정몽준 후보도 이 사람만큼 화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바로 김한울 노동당 종로·중구당원협의회 사무국장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 서울농학교에 마련된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를 찾았습니다. 한 표를 행사한 박 대통령은 ‘한 사람’만 빼고 참관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습니다. 가장 끝에 앉아있던 김 사무국장은 손을 내민 박 대통령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며 “참관인입니다”라고 짧은 대답만 건넸습니다.
대통령을 면전에서 민망하게 만들었다는 파격에 이목이 쏠렸습니다. ‘김한울’이라는 이름이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어 상위권을 오르내렸죠. 그는 쏟아지는 관심에 화답하는 여유도 보였습니다. SNS에 “몰염치한 자가 안 어울리게 대통령이랍시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라는 뜻에서…”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표현은 과격했지만 악수를 거부한 이유가 세월호 참사 대응에 대한 불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네티즌 여론은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라” “보기 안 좋았다”라는 비난과 “용감하다” “나라도 안 했을 거다”라는 옹호로 나뉘어 하루 종일 갑론을박을 이어갔습니다. 진보와 보수성향 네티즌 사이에는 육두문자를 동원한 거친 격론도 벌어졌습니다.
그의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신념에 대한 솔직함일까요, 예의를 저버린 그릇됨일까요. 물론 둘 다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실종자가 있는데 선거로 세월호 참사가 관심 밖으로 밀려나선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서다보니 웃으며 손을 내미는 게 내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싫은 사람이라도 예의는 ‘쿨하게’ 갖추는 게 세련되고 성숙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공손하게 악수한 다른 참관인들이 얼마나 머쓱했을까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노동당 당원이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했다고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은 원래 이렇다” “보수진영은 항상 꼬투리만 잡는다”는 식으로 싸잡아 비난하며 싸울 필요가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애도에 진보·보수가 따로 있었습니까.
그런데 투표가 끝난 5일에도 인터넷에서는 논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그의 악수 거부가 ‘보수층 결집’에 영향을 줬다는 정치공학적 분석을 내놓자 “그렇다” “아니다”라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정말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