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성희롱 의원에 대한 日의 ‘철저한 응징’…우리는?

[친절한 쿡기자] 성희롱 의원에 대한 日의 ‘철저한 응징’…우리는?

기사승인 2014-06-25 17:48:55

“고통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일본 도쿄도(東京都)의회 자민당 소속 스즈키 아키히로(鈴木章浩·51) 의원은 다함께당 시오무라 아야카 의원(鹽村文夏·36·여)에게 허리를 굽혀 공손히 사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가 아닙니다. 그들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펑펑 터졌습니다, 이 모습이 일본 전역에 방송됐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시오무라 의원이 지난 18일 의회 정례회의에서 임신·출산 등 여성 지원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그러자 스즈키 의원이 “당신이나 빨리 결혼해라” “아이 못 낳는 것 아니냐”라며 야유를 보냈습니다. 애써 미소를 유지한 시오무라 의원은 자리로 돌아와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후 시오무라 의원은 당사자는 밝히지 않은 채 성희롱 내용만 SNS에 올렸습니다. 당연히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며 분노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자민당은 자체 조사에 나섰습니다. 결국 스즈키 의원은 5일 만에 이실직고한 후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공개사과와 함께 탈당했습니다.

성희롱 정치인이 기자들까지 모아놓고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하는 장면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지난해 7월 한 야당의원은 오찬을 하며 여기자들이 수치심을 느낄 농담을 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기자들에게 낸 난센스 퀴즈의 정답을 이야기하면서 성관계가 떠오르는 표현을 쓴 겁니다. 뭇매를 맞은 이 의원은 “참석했던 여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새누리당은 문제의 의원을 향해 “입에 담기도 민망하다” “무릎 꿇고 사죄하라”라고 비난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누리당에서도 문제가 터졌습니다. 한 중진의원이 여기자에게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해당 의원은 “술에 취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했지요.

성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한 국내 정치인들은 개인적으로 사과한 뒤 보도자료 형식으로 알리거나, 공식 석상에서 사과 발언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고는 끝입니다. 간혹 출석정지 같은 경징계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해자를 향해 머리를 푹 숙인 후 탈당하는 것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성희롱 사건의 해결은 ‘피해자 중심주의’가 원칙입니다. 당사자가 시끌벅적한 방식을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의 성희롱이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지는 이유는 ‘덜 시끄럽게’ 넘어가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성희롱을 한 의원이 철저하게 응징되는 일본의 정치문화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고 있자니 일본 정치권에 궁금한 게 생깁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겐 언제 허리 굽혀 사과할 겁니까?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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