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화가 혜원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빗장을 풀고 외출을 한다. ‘미인도’의 외부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다음 달 2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내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는 ‘간송문화’ 전 2부 ‘보화각’에서 ‘미인도’를 비롯한 간송미술관의 대표작을 대거 선보인다.
앞서 열린 1부 전시에서 간송 전형필 선생의 다양한 문화재 수집 일화를 중심으로 꾸몄다면 이번에는 명품 위주로 골랐다.
혜원의 미인도는 정갈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 좁은 어깨,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치마, 그리고 뭔가를 꿈꾸는 듯한 맑은 눈매가 특징이다. 조선시대 그려진 여인의 그림 중 단연 최고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여자에 대해 매우 잘 아는 사람이 그린 듯한 그림이라는 이유로 신윤복이 여자라는 억측이 제기됐고, 아예 신윤복을 남장 여자로 설정한 드라마와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국민여동생 문근영이 맡았다. 남장여자 신윤복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이를 소장한 성북동 간송미술관에는 미인도를 보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27일 열린 간담회에서 “작품만 봐도 한국 미술사를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별로 가장 중요한 작품을 골랐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인 ‘보화각’은 간송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사립미술관의 이름으로, 당시 간송의 스승 위창 오세창 선생은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에서 보화각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번 전시에는 겸재 정선의 ‘압구정(狎鷗亭)’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弄蝶)’, 추사 김정희의 ‘고사소요(高士逍遙)’, 탄은 이정의 ‘풍죽(風竹)’ 등 44점이 새로 공개된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해례본’과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 8m18㎝ 길이에 달하는 대작인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 등 1부 전시에서 소개됐던 주요 작품까지 포함하면 모두 114점이다.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과 ‘금동삼존불감’(국보 제73호) 등 국보가 12점, 보물이 8점도 나왔다.
가을 내금강의 전경을 화폭에 압축해 그린 ‘풍악내산총람’과 강남 압구정동 일대의 모습을 그린 ‘압구정’, 들쥐와 청수박의 그림이 마치 신사임당을 떠올리게 하는 ‘서과투서(西瓜偸鼠)’ 등 겸재의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다.
5만원권 지폐 뒷면에 실린 탄은 이정의 ‘풍죽’, 병아리를 훔쳐가는 들고양이 때문에 벌어진 소동을 포착한 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 등도 선보인다. 추사가 타계하기 두 달 전인 1856년 8월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도 나왔다. 추사가 죽음을 앞두고 깨달은 가족의 소중함을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라는 뜻)이라는 글씨에 담은 작품이다.
최근 막을 내린 1부 전시에서는 약 12만명(하루 평균 1460명)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고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전했다. 간송의 장손인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첫 외부 전시라 걱정이 많았는데 1부 전시가 대과없이 마무리되고 젊은 층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 고무적”이었다고 말했다. 2부 전시는 9월 28일까지 열린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