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 조 추첨식이 열린 지난해 12월 7일 브라질 코스타 도 사우이페. 펠레(74·브라질)는 머뭇거렸다. 원하지 않은 질문을 받은 듯 표정은 어두웠다.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만연했던 웃음기는 사라졌다. 정적은 3초 가까이 흘렀다. 펠레는 한 차례 말을 더듬더니 질문을 건넨 진행자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브라질이 결승전에 진출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조국의 결승 진출을 예상한 축구영웅 펠레의 전망이었다. 반응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징크스 가운데 하나인 ‘펠레의 저주(The Curse of Pele)’를 의식한 반응이 지구촌 곳곳에서 쏟아졌다.
각국의 인터넷 매체는 펠레의 발언을 앞세워 브라질의 결승 진출 실패를 예상하는 흥밋거리 수준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브라질 네티즌의 탄식과 나머지 본선 진출 31개국 네티즌의 환호가 엇갈렸다. 일부 브라질 네티즌은 우승후보를 물은 진행자와 대답한 펠레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월드컵 때마다 우승후보에 대한 질문으로 홍역을 치른 펠레는 2분여의 짧은 출연시간이 끝나자 서둘러 무대 밖으로 빠져나갔다.
월드컵 개막을 두 달 앞둔 지난 4월 4일 미국 뉴욕. 펠레는 기자들로부터 다시 한 번 우승후보 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펠레는 이번엔 독일과 스페인을 지목했다. 이후부터 같은 질문을 수차례 받았지만 독일과 스페인을 빼놓지 않고 우승후보로 거론했다. 그리고 스페인은 조별리그 첫판부터 네덜란드에 4골 차로 대패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챔피언인 스페인은 4년 만에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당하면서 저주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오는 9일 오전 5시(한국시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에서 열리는 독일과 준결승전은 ‘펠레의 저주’가 충돌하는 경기다. 브라질과 독일은 펠레가 지목한 우승후보들 가운데 결승전의 문턱까지 생존한 마지막 두 팀이다. 두 팀은 시즌을 마치고 곧바로 돌입한 월드컵에서 이미 5경기를 소화하며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펠레의 저주’와 같은 징크스는 경기 종반에 선수단의 정신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4강에 오르면서 ‘펠레의 저주’를 피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월드컵의 패권을 노리는 두 팀에는 결승진출권을 놓치는 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재앙이다.
두 팀은 4강까지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브라질은 3승2무, 독일은 4승1무를 기록 중이다. 정규시간 90분과 연장 30분 안에 승부를 가를 경우 서로에게 첫 번째 패배를 안길 수 있다. 브라질은 간판 공격수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가 척추골절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독일은 선수단이 독감으로 신음하고 있다. 징크스만큼이나 전력상의 악재도 두 팀에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