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이 공영방송 NHK 때문에 떠들썩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때문에 시끄러운 거죠.
사건의 경위는 이렇습니다. 스가 장관은 지난 3일 NHK의 ‘클로즈업 현대(クロ-ズアップ現代 )’라는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 진행자인 구니야 히로코(國谷裕子·여·캡처화면 오른쪽 사진) 캐스터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구니야 캐스터는 언론인의 길을 걸은 지 30년이 넘은 베테랑입니다. 1998년 여성 방송인 상, 2011년 일본기자클럽 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고, 2003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에 일본이 휘말리는 것 아닌가” “헌법 해석을 이렇게 쉽게 바꿔도 되나”라는 등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당연한 자세였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넘은 11일에 프라이데이라는 주간지에서 발칵 뒤집힐만한 단독 보도가 나왔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이 방송이 끝난 후 스가 장관과 동행한 비서관이 제작진에게 “어떻게 된 거냐”면서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는 총리 관저 측에서 전화가 와 “질문을 시킨 게 누구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드러난 거죠.
더 기막힌 건 NHK의 대응입니다. 따지기는커녕 모미이 가쓰토(井勝人) 회장을 비롯한 NHK 고위층이 찾아가 사과를 했다는 겁니다. 함께 고개를 숙이고 돌아온 구니야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고 하죠.
여론은 들썩였습니다. 모미이 회장이 취임 때부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유착 의혹이 제기된 터라 “NHK가 정권 홍보방송인가”라는 우려가 터져 나왔습니다. 모미이 회장은 올해 1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위안부는 전쟁을 한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세계 각국의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산케이 신문 등 현지 주요 언론에 따르면 스가 장관은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프라이데이 보도는) 너무 심한 기사다. NHK 프로그램에 항의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습니다.
NHK 사건 내용이 진실인 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프라이데이가 연예인 사생활 스캔들 폭로를 주로 다루는 잡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 눈길이 쏠리는 건 스가 장관이 같은 날 우리에게도 자위대 문제와 관련해 인상을 찡그린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롯데호텔이 11일로 예정돼 있던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행사 장소 제공을 거부한 것에 대해 정례 회견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극히 유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1차적으로 호텔 측에 항의했지만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우려를 전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이라는 부분이 특히 불쾌합니다. 한국 국민들의 정서 상 문제가 된 것을 알면서도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민간 호텔의 결정에 대해 한국 정부까지 운운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스가 장관은 프라이데이 기사에 “히도쓰기루(ひどすぎる·너무 심하다)”라고 했는데요. 자신도 ‘히도쓰기루’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