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무슨 사이?” “둘이 뭐 했나?”
이런 기사 제목을 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누구나 남녀의 은밀한 애정행각을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 수사’와 관련해, 그것도 대중오락 주간지도 아닌 주류 언론이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면 정상일까요. 포털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비정상적인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25일 오후 7시쯤 경기도 용인의 한 오피스텔에 숨어 있던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대균(44)씨를 검거했습니다. ‘순천 매실밭 변사체’가 유씨라는 게 밝혀진 지 이틀 만입니다. 대균씨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도피 조력자 ‘신엄마’의 딸 박수경(34)씨도 함께 검거됐습니다.
부부도 아닌 남녀가 20㎡ 밖에 안 되는 좁은 오피스텔에서 수개월 간 함께 생활했다는 점, 박씨가 두 아이의 엄마에 이혼 소송 중이라는 점, 박씨가 미인형의 외모를 가졌다는 점 등 흥미를 끌 요소가 충분했습니다.
언론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유대균-박수경, 무슨 관계?” “4개월 간 그들이 머문 방안에선 ‘이것’이 나왔다” “내연관계 의혹 알고 보니…” 등의 기사가 연이어 등장했습니다. 27일 오전 네이버에 ‘유대균 박수경’으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기사가 400개 나올 때까지 불륜관계를 언급하거나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 45개였습니다. 10개 중 1개가 조금 넘는 겁니다. 두 사람의 검거 사실을 전하거나 경찰의 압송 당시의 모습을 스케치한 기사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무척 높은 비율입니다.
이들의 검거로 얻을 수 있는 세월호 비리수사의 방향, 유씨 일가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얼마나 제공했는지, 앞으로 수사는 어떻게 될지 등의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독자를 자극해 기사조회를 유도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SNS에서는 “유대균과 박수경이 무슨 사이였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세월호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나” “두 사람 관계 궁금해 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이 묻히고 있다”라는 네티즌의 불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경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비리수사의 중심도 아닌 박씨의 신상을 공개해 흥미 구도의 판을 먼저 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박씨의 혐의는 범인은닉이 전부입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유씨 일가 수사에 나선 이유는 하나입니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 참사의 근본원인을 확인하고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것입니다. 유대균과 박수경의 ‘관계’가 무엇인지가 규명돼야 할 진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