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쓰고 행복을 전하는 문형태 작가 '크라운' 개인전, 정동 청안갤러리서 8월 24일까지

왕관 쓰고 행복을 전하는 문형태 작가 '크라운' 개인전, 정동 청안갤러리서 8월 24일까지

기사승인 2014-07-29 10:47:55


“나는 보잘 것 없는 새였다. 네가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사랑이라는 왕관을 쓴 행복한 존재가 되었다. 땅에 앉아 내가 날았던 하늘을 이야기해주었다.”

다채로운 색채와 두터운 질감으로 일상의 이미지들을 초현실적인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형태(38) 작가의 전시 서문이다. 7월 30일부터 8월 24일까지 서울 정동 청안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의 타이틀을 그는 ‘크라운(CROWN)’으로 붙였다. 왕관은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에 기반하고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고아 출신으로 어렵게 생활을 꾸려 갔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생계에 뛰어들어야 했던 아버지였다. 피곤한 몸으로 새벽 1∼2시쯤 귀가한 아버지는 여섯 식구가 사는 단칸방 한구석에 러닝차림으로 앉아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들에게는 사람의 몸을 한 번 그려보라며 누드집을 구해 줬다. 아들이 수채화를 그리다 물 한 방울이 흘러 실패했다고 하면 “예쁜 누나의 얼굴에 점이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렇다고 미워 보이냐. 더 예뻐 보이지 않느냐. 이 물방울이 바로 그 점이다”라고 격려했다.

이렇게 멋진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훗날 화가가 된 아들은 “그림은 항상 즐거운 것”이라고 되새기며 작업한다. 작가는 소소한 일상의 이미지를 초현실주의 감성으로 그려낸다. “행복했던 순간, 찰나를 붙잡고 싶다”는 염원에서다. 화려한 색감에 과장되거나 왜곡된 그림들이 낯설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붕 위 굴뚝에서 피어오른 소나무 풍경은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고, 남녀가 나란히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여자친구와의 의사소통에 대한 심정을 담았다. 어떨 때는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모르다가 한두 달 뒤에 ‘아 이때 이래서 이렇게 그렸구나’ 싶을 때도 있다고 한다. 요즘 작가들이 ‘개념 미술’을 하는 것에 대해 꼬집은 그는 “주머니 사정이 달라질 때마다 그림도 달라진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작가는 황토를 섞은 물을 먼저 캔버스에 바른 뒤 마르면 흙을 걷어내고 흙물이 노랗게 든 캔버스에 크레파스로 밑바탕을 그린다. 그림에 도는 노란 기운은 이런 작업 방식 때문이다. 작가가 굳이 캔버스에 흙물을 바르는 이유는 작품들과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라고. 이모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는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기본 명제를 떠올려 자신이 죽은 뒤 곳곳에 남아 떠돌아다니게 될 작품과 미리 인사를 하려고 이런 작업 방식을 택했다.

작가는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배우 임수정이 듣는 라디오, 가수 김장훈의 8집 ‘조각’ 스페셜 앨범 등을 만드는 등 그림 외에도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미술은 네모난 캔버스 안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멋지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회화든 조각이든 결국 다 똑같은 개념인 것이죠.”

그는 최근 케냐에 2주간 자원 봉사를 다녀오면서 ""그림은 즐거운 것""이라는, 그동안 잠시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철학’을 다시 깨닫게 됐다고 했다. ‘크라운(왕관)’이라는 이번 전시 제목은 대학 졸업 후 먹고 살려고 홍대 앞에서 물건에 그림을 그려 팔 때 그에게 2만∼3만원씩 보내주며 위로해 주던 이들을 떠올려 지었다.

“칭찬을 받으니까 힘이 생기더라고요. 힘을 내라고 다독이는 손바닥의 모양이 왕관과 비슷하잖아요.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또 전하고 싶었어요.”

2002년 첫 개인전 이후 해마다 서너 차례 개인전을 여는 그는 “작품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전시가 잡히면 작업에 매달리는 성격”이라며 “사람들이 많이 보고 즐기면서 행복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인터뷰를 했는데 ‘가난을 무기로 삼은 작가’라는 표현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는 그는 “기자들도 그렇고 평론가들 마찬가지지만 보도자료 조금 인용하고 작가의 멘트 적당히 달고 천편일률적인 글이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전시는 휴일 없이 오전 11시30분부터 저녁 8시30분까지 열린다. 그림 감상 전후에 갤러리 근처 어반가든에서 호젓한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다 (02-776-5105).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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