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A씨(35)는 온라인 마케팅 업체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블로그 계정을 홍보에 활용할 수 있도록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빌려주면 매월 1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완전한 양도는 아니었습니다. 업체는 홍보활동을 낮 시간으로 제한했습니다. 그 외의 시간에는 A씨가 원하는 대로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A씨는 수락했습니다.
3개월 뒤 A씨는 블로그 운영사인 포털사이트 네이버로부터 제재 통보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25년간 다른 블로그에 댓글 작성 및 수정이 불가하고 엮인글, 안부글, 공감하기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포스팅만 있을 뿐 교류 없이 25년간 블로그를 운영해야 하는 겁니다. 교류가 없는 블로그는 흉가와 다르지 않습니다. 블로그를 폐쇄해야 할 판입니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징역형에서도 25년형은 무거운 벌입니다. 전직 프로농구 선수 정상헌이 처형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혐의로 1심에서 선고받았던 형량이 25년입니다. 2심에서 우발적인 범행이라는 점이 참작돼 20년형으로 줄었지만 우리 사회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A씨가 정상적인 블로그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2039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A씨가 60세를 맞는 해입니다. 그 때까지 블로그의 유행은커녕 네이버의 존폐 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습니다. A씨는 묵묵하게 기다릴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블로그 활동을 포기할 수도 있지만 평범한 네티즌과 생각이 같다면 다른 포털 사이트를 찾거나 가족, 지인의 네이버 계정을 빌려 새로운 블로그를 개설할 겁니다.
25년 제재의 무시무시한 조치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조소가 나옵니다. A씨의 소식이 전해진 5일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는 “티스토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초등학생들처럼 어머니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빌려라” “네이버가 2039년까지 존재할까” “통보를 받을 때까지 3개월간 10만원씩 모두 30만원을 벌었으면 이익이다” “25년이 아닌 25억 광년의 제재를 받아도 네티즌에게 경고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네이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A씨의 경우처럼 타인에게 넘긴 계정이 성매매 등 불법적인 내용을 홍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용한 블로그가 의도하지 않게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네티즌은 제재를 받아도 어떤 방식으로든 재개할 수 있으니 블로그 오용으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란 쉽지 않습니다. 네이버를 포함한 포털사이트들의 책임감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