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바람을 잊지 않고 약속을 지켰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124위 시복식 현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식 33일째를 맞은 김영오씨를 비롯해 유가족들을 뜨겁게 끌어안았다.
이날 한국천주교의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을 찾은 교황은 오전 9시10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도로에서 무개차로 옮겨 탔다. 무개차는 서울시청, 청계광장을 지나 경복궁 방향으로 이동했다. 현장을 찾은 미소와 함께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때로는 차를 멈추고 아이들을 안아 볼에 입 맞췄다. 그의 가슴엔 전날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 집전을 앞두고 제의실 앞에서 만난 10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이 전해 준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었다.
무개차는 광화문 앞쪽에 세운 제단 앞에서 방향을 틀어 세종로로 향했다. 이동하던 차량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멈춰 섰다.
행사를 위해 표시한 ‘C24’ 구역이었다. 이곳은 그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하던 자리였다.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와 협의해 세월호 유가족 400여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손에는 “진실 규명을 촉구한다”는 영문과 한글 글귀가 적힌 노란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유족들을 향해 손을 모아 짧은 기도를 올리고 차에서 내린 교황은 정제천 신부의 설명을 듣고 바리케이드 건너편 한 남성에게 다가갔다. 이날로 단식 34일째인 단원고 유민양의 아빠 김영오(47)씨였다. 전날 교황을 만난 세월호 유가족들은 시복식 현장에 가면 김씨를 안아 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초구하며 단식 농성 중이었다. 김씨는 교황을 만나기 위해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있던 텐트의 자리도 바리케이드 쪽으로 옮겼다. 텐트 위에는 ‘We want the truth(우리는 진실을 원한다)’는 글귀가 써 있었다.
교황을 만난 김씨는 “특별법 제정을 도와달라. (저희가 쓴) 편지를 드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교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잊지 말아 달라”는 말과 함께 편지를 담은 노란 봉투를 전달했다. 이어 교황의 가슴에 비뚤어진 노란 리본 배지를 바로잡은 뒤 그의 손에 입을 맞췄다. 교황도 그의 노란색 봉투를 받아 오른쪽 가슴에 넣은 뒤 그를 안고 위로했다.
교황은 김씨와 함께 그 자리에 함께한 유가족들을 안아 주고 손을 잡아줬다.
일부 유가족들은 울먹이며 “감사합니다”란 말을 연발했다. 다시 차에 오른 교황도 한 동안 유족에게도 눈을 떼지 못하다 카퍼레이드를 재개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