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 승객을 뒤로 하고 탈출한 이준석(69) 세월호 선장이 침몰사고 이후 처음으로 법정에서 입을 열었다. 그는 과실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에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관행’이라고 했다.
이 선장은 29일 광주지법 형사 13부(임정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청해진해운 임직원과 우련통운 등 관계자 11명에 대한 5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모두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 선장은 한 변호인이 “사고 당시 조타실의 비상벨을 왜 누르지 안 눌렀느냐”고 묻자 “그때까지 생각을 못했다”고 답했다. 이어 “판단이 안 선 것이냐, 비상벨이 어디 있는지 생각이 안 난 것이냐”는 질문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다. 판단할 능력이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상벨을 누르면 선내 알람이 울리지만 이등 항해사에게 방송을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벨을 누를 생각을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 선장은 검사가 세월호가 출항하기 전 안전점검 보고표가 허술하게 작성된 경위를 묻자 “관행적으로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승객 수, 화물적재량이 공란으로 남아 있던 당시 보고표는 삼등 항해사가 선장의 이름으로 서명해 운항관리실에 제출했다.
이 선장은 검사가 “그런 잘못된 관행을 직접 만든 것 아니냐”고 묻자 “신OO(세월호의 또 다른 선장)이 시켰다. 내가 교육을 시켰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신씨가 정식 선장이고 난 나이가 많고 촉탁직이라 교대 선장”이라고도 주장했다.
이 선장은 평형수를 규정보다 안 채우고, 화물은 과적해 운항한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관련 질문에 “일등 항해사가 담당해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대답으로 일관했다.
이 선장은 출항 전 화물·구명설비 등의 상황을 확인했느냐는 질문에도 “다른 건 눈으로 확인했고 화물은 내가 아닌 일등 항해사 담당”이라고 말했다.
이 선장은 최종 책임자는 선장이지만 고박이나 적재 담당은 일등 항해사이기 때문에 “다 잘됐다”는 보고만 받고 출항했다고 밝혔다.
이 선장은 변호인이 사고 지점이 위험 해역인데도 조타실이 아닌 침실에 있었던 이유를 묻자 “맹골수도는 협수로가 맞지만 사고가 난 곳은 폭이 6마일(약 11킬로미터) 정도 되는 구간으로 넓은 해역”이라며 “항해사(삼등 항해사)가 무난히 잘할 것으로 믿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선장이 있어야 할 구간은 조타실이라고는 인정했다.
이 선장은 과적 거부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이유 등 선장의 책임과 연관이 깊은 질문에는 동문서답을 하거나 말을 더듬기도 했다. 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듯 질문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이에 재판장은 자리를 질문자 쪽으로 옮기도록 하고 검사는 목소리를 키워가며 물어봤다.
사진=뉴스Y 보도화면 캡처
김현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