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정규시즌 4위 LG 트윈스가 열세일 것이라는 분석을 비웃 듯 2위 넥센 히어로즈를 9대2로 대파하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LG는 준플레이오프 후 하루만 쉬고 나선 1차전에서 3대 6으로 재역전패 했습니다. 분위기가 가라앉을 만한 상황에서도 계속된 선전이 놀라운데요. 많은 이들이 최경철, 브래드 스나이더 같은 일부 타자들의 깜짝 활약이나 선발·불펜 투수진의 호투를 원동력으로 꼽습니다. 다 옳은 분석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밑에 깔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MVP 못 탈수도 있으니까 말하겠다, 사실은….”
경기가 끝난 후 LG 유격수 오지환(24)에게 한 기자가 ‘MVP를 타면 꼭 하고 싶다던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오지환의 입에서 망설임 없이 나온 건 정규시즌에서 자신과 키스톤 콤비를 이룬 2루수 박경수(30)였습니다.
오지환은 “경수형이 함께 하지 못해 개인적으로 슬프다. 누구보다 가을야구에 오고 싶어 했던 형이다”라며 “준플레이오프부터 오늘 경기까지 TV로 다 봤을 것이다, 우리 모두 형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LG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이듬해인 2003년에 입단한 박경수는 올해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LG가 11년 만에 가을야구 무대에 올라간 지난해엔 군 복무 중이었죠. 11년 간 기다린 생애 첫 가을야구를 위해 후반기에 맹활약하는 등 팀의 4강에 쏠쏠하게 힘을 보탰지만 하필 마지막 경기에서 다쳐 가을야구를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겁니다. 양상문 감독은 2차전 후 인터뷰에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도 박경수가 엔트리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허탈할지 동료들이 같은 선수로서 그 심정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포스트시즌 들어 타석에 선 LG 타자들의 헬멧을 보면 숫자 ‘6’이 써져 있습니다. 박경수의 등번호입니다. 그라운드엔 없어도 ‘박경수는 우리와 함께 뛰고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목동구장에 취재를 가 LG 선수들과 짧게나마 대화를 하면 오지환처럼 “경수도 같이 뛰면 좋을 텐데…” “경수형 봐서라도 우리가 잘해야 한다”는 등 박경수 이야기를 한마디씩 꼭 붙이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경기를 할 때나 연습을 할 때나 마음 속 한 구석엔 아쉽게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동료가 있다는 뜻이겠죠. 주장 이진영, 박경수 대신 2루수로 출전 중인 김용의, 오지환은 한 매체를 통해 박경수에게 편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4위로 가을야구에 겨우 턱걸이한 LG가 정규시즌 승차도 월등히 앞선 3위 NC를 제치고 2위 넥센과도 대등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근본적인 힘은 안타나 삼진 개수처럼 숫자로 표현이 안 되는, 바로 이런 선수들 간의 끈끈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LG는 10년 간 가을야구에 오르지 못한 암흑기 시절 선수의 개인 기량만 좋을 뿐 단합은 안 되는 ‘모래알 팀’이라는 눈초리를 받아야 했습니다. 올해 LG의 가을야구 행보가 어디까지 갈 진 모르지만, 앞으로도 최소한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