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부족과 전염병이 만연하던 시절, ‘건강함’으로 상징되던 풍만한 육체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뚱뚱하거나 조금만 통통해도 ‘비만하다’는 질타를 받기 일쑤다.
‘뚱뚱함’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한 데는 많은 연구에서 성인병의 원인으로 ‘비만’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미의 기준이 풍만한 육체에서 군살 없는 날씬한 몸으로 넘어가면서 살찐 몸은 비정상 혹은 비상식이 돼버렸다.
◇뚱보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
많은 사람들이 살을 빼려는 목적으로 ‘건강’보다는 ‘미용’ 상의 이유를 드는 것도 뚱뚱한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가 일조한다. 직장여성 김모(31세)씨는 “전날 야근으로 피곤해 다음날 지각을 했는데, 상사로부터 ‘게을러서 그렇다’는 핀잔을 들었다. 뚱뚱한 사람은 게을러서 살이 쪘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며 억울해했다.
사회적으로 비만한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력서에 키와 몸무게를 적도록 공란이 만들어진 이유를 비만과 따로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162cm에 60kg인 여성이 뚱뚱하다는 인상을 안겨줄까 키와 몸무게의 수치를 더하거나 빼는 것은 일상적이다. 그러나 비만도 계산법[몸무게(kg) ÷ (신장(m) × 신장(m))]에 따라 위 여성은 정상체중에 해당한다.
고 신해철 씨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도 악플은 달렸다. 운동으로 빼야할 살을 수술로 뺀 것이 화근이었다는 내용이다. 의료사고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만을 질환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잘못으로 보는 삐뚤어진 시각이 작용한 결과다.
실제 사망소식 전해지고 나서 신 씨가 받은 ‘위밴드 수술’은 한동안 연관검색어 상위를 걸려있었다. 위밴드 수술의 안정성이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위밴드 수술은 고도비만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수술법으로 위의 일부를 잘라내는 위절제술 다음으로 고려되는 치료법이다.
전체 인구 중 비만인구의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많은 미국은 위밴드 수술을 포함한 고도비만 치료수술에 대해 건강보험의 혜택이 적용돼 있다. 비급여항목으로 분류되어 수천만원을 주고 비만치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우리의 실정과 다르다. 두 국가간 차이는 비만을 의사의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하는 데 있다.
◇인간이 비만해지는 이유
일단 비만은 몸이 필요로 하는 양보다 더 많은 양을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다. 하지만 먹고 싶은 마음, 즉 ‘식욕’은 인간의 의지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인체 시스템에 기인한다.
우리 몸은 몸 안에 저장된 에너지가 없으면 배고파하고 음식을 통해 신체 에너지를 채운다. 일을 하거나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소비하고나면 맛있는 음식들이 생각난다. 이것이 정상적인 식욕 생성 과정이다.
비만한 사람은 몸 속 에너지가 충만한데도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섭취한다. 식욕 조절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식욕은 몸 속 지방에서 분비되는 ‘렙틴(leptin)’이 억제한다. 따라서 저장해놓은 지방이 많을수록 렙틴 분비량이 늘어 식욕이 억제된다.
또 위장이 비어있을 때 ‘그렐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은 배고픔을 느끼게 한다. 결과적으로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그렐린 호르몬과 배부름을 느끼게 하는 렙틴 호르몬의 조화가 식욕을 조절한다. 식욕을 조절하는 두 호르몬의 분비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배에 음식이 있어도 허기져하거나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인하대병원 외과 허윤석 교수는 “고도비만환자가 수술을 선택하면 주위에서 살을 빼려는 지나친 욕망이라며 환자를 비난하기 일쑤다. 몸이 고장 나서 살찐 것이다. 다른 질환에 대해서는 쉽게 수술을 고려하면서 비만질환에 대해서만 엄격한 것이 한국사회”이라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