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는 소녀 팬들이 모였다. 오후가 되면서 수는 점점 늘었다. 영화 ‘레디액션 청춘’ 언론시사회가 오후 2시부터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언론시사회에선 이런 일이 잘 없다. 연예인들이 참석하는 VIP시사회에나 사람들이 몰린다. 연기에 도전한 아이돌 가수들이 출연한 경우 유독 열기가 뜨겁다. ‘레디액션 청춘’에 쏟아진 관심 역시 그래서였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이돌그룹 멤버 동해(슈퍼주니어), 남지현(포미닛), 송승현(FT아일랜드)이 출연했다. 세 사람에게 모두 스크린 데뷔작이었다.
배우들뿐만 아니라 감독들도 신인이었다. 영화는 네 명의 신인감독이 만든 단편영화 4편을 엮어 만들었다. ‘소문’ ‘훈련소 가는 길’ ‘세상에 믿을 놈 없다’ ‘플레이 걸’로 구성됐다. 청춘과 액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나 각각이 독립적인 작품이다. 동해는 ‘소문’, 남지현이 ‘훈련소 가는 길’, 송승현은 ‘세상에 믿을 놈 없다’에서 주연을 맡았다.
학생 여러 명이 속닥이는 음성이 흐르며 영화는 시작한다. 첫 작품 ‘소문’이다. 늘 반듯한 이미지의 전교회장 정우(동해)가 여자친구 혜리의 임신 소식을 들은 뒤 혼란에 빠지는 내용이다. 그런 와중 혜리의 섹스 동영상이 돌고 있다는 헛소문까지 퍼진다.
동해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 고교생의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해야했다. 쉽지 않은 연기다. 그에겐 SBS ‘괜찮아, 아빠딸’(2010), 채널A ‘판다양과 고슴도치’(2012), OCN ‘신의 퀴즈 4’(2014) 등 드라마에서 연기한 경험이 있었지만 스크린엔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장면을 과장되게 표현했다.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를 하고 있지만 마치 “저 지금 연기하는 중입니다”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다른 두 배우 역시 비슷했다. 남지현은 군에 입대하는 남자친구를 훈련소로 보내는 여대생 승아로 분했다. 만약 작품이 TV프로그램 등에서 하는 짧은 콩트식 단막극이었다면 그리 나쁜 평을 받진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배우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주기엔 부족했다. 물론 분량 자체가 크지 않았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송승현도 마찬가지다. 극중 인터넷을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과 팀을 이뤄 3인조로 은행을 터는 강도를 연기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 상황, 인간이 느끼는 내적·외적 갈등을 적절히 표출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송승현은 그냥 열심히만 했다. 싸우고 구르며 고군분투했지만 연기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아직 준비가 부족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배우들만 탓하기엔 무리가 있다. 작품 내용이나 연출도 높은 수준을 보여주진 못했다. 단편영화라는 점을 고려해도 그렇다. 극단적인 내용은 공감하기 힘들고 단순한 화면구성은 감동을 주지 않는다. 상영이 끝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행사 진행자가 취재진에게 질문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진한 감흥을 안긴 영화가 끝난 뒤엔 보통 감독과 배우들을 향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간담회에서 동해는 “SM에서 연습생 시절을 보내면서 교복을 입고 드라마나 스크린 앞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꿈을 이뤘다”고 전했다. 남지현은 “단편영화라 함께 소통하고 배울 수 있어 유익했다”며 “하나하나 많이 배웠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송승현은 “영화배우라는 꿈을 이뤄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좋은 경험이 됐고 앞으로 좋은 작품에서 뵀으면 좋겠다”고 벅찬 듯 말했다.
경험이 됐고 많은 걸 배웠다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관객들이 지켜봐야하는 게 맞는 일일까. 지불된 비용의 대가는 완성된 작품이어야 한다. 인기 아이돌이 전면에 나서면 홍보 효과는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인지에 대해선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