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프로야구의 가장 큰 이슈의 주인공은 아마도 올 시즌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던 외야수 브래드 스나이더(32·미국)일 겁니다. 넥센은 이날 LG와 재계약을 하지 못한 스나이더를 영입했다고 밝혔습니다.
야구팬들에게 스나이더의 이적이 큰 화제가 되는 건 단순히 외국인 선수 한 명이 같은 서울 연고의 팀으로 옮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 쪽엔 ‘대박사(史)’, 상대방엔 ‘잔혹사’가 되는 묘한 인연이 이제 외국인 선수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양팀 팬들의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터져나오기 때문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굳이 알릴 필요도 없겠지만, 잔혹사의 장본인은 LG, 대박사의 주인공은 넥센입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 33년 역사상 첫 ‘200안타’ 고지(201안타)를 밟고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거머쥔 서건창(25)은 2008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습니다. 그는 LG에서 1타수 1삼진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방출됐습니다.
병역 의무를 마친 후 공개 테스트를 통해 넥센 유니폼을 입은 서건창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습니다. 2012년 타율 0.266(433타수 115안타), 40타점, 39도루로 가능성을 증명한 그는 급기야 올해 한국 프로야구의 새역사를 쓰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서건창 이전엔 박병호가 대표적입니다.
성남고 재학 시절부터 4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야구계의 큰 관심을 받은 박병호는 2005년 계약금 3억3000만원(연봉 2000만원)을 받고 LG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LG의 차세대 4번 타자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박병호는 LG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고, 2011년 트레이드를 통해 둥지를 넥센으로 옮겼습니다.
박병호는 넥센 선수가 되자 LG에서 원하던 선수가 됐습니다.
2012년 타율 0.290, 홈런 31개, 105타점으로 넥센 구단 사상 첫 정규 시즌 MVP가 됐습니다. 질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엔 타율 0.318, 홈런 37개, 117타점을 기록해 2년 연속 MVP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올해엔 이승엽(삼성), 심정수(전 삼성)에 이어 세 번째로 50홈런(52개)을 넘긴 주인공이 됐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팀을 옮긴 후 MVP를 받은 선수는 박병호와 서건창, 1995년 김상호(전 OB)로 단 3명입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김상호는 LG의 전신인 MBC 청룡에서 현 두산 베어스의 전신인 OB로 유니폼을 갈아입었습니다.
사실 스나이더가 넥센의 선수가 된 것에는 LG의 ‘쿨한’ 결정이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LG는 마음만 먹으면 스나이더와 재계약하지 않으면서 규약 상 임의탈퇴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스나이더는 한국 내 원 소속구단 외에 다른 구단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LG는 스나이더를 웨이버 공시했습니다.
스나이더 정도면 좌타자·외야수 자원이 부족한 다른 국내 구단이 낚아챌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혹시 1년 후 당할지 모르는 망신이 두려워 한 선수의 앞길을 막는 결정을 하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것도 선행된 건 스나이더와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겁니다.
스나이더는 정규 시즌에 부진하다가 가을야구(8경기)에서 타율 0.430으로 불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혹시 2015 시즌에 거포 노릇을 톡톡히 해주지 않을까하고 기대를 한 LG 팬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2015 시즌엔 다른 팀도 아닌 ‘하필’ 넥센의 선수가 된 스나이더를 보게 됐습니다.
만일 LG가 새로 영입한 타자가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다면 스나이더가 넥센에서 잘하든 못하든 상관이 없겠죠. 하지만 스나이더만 잘한다면 LG 팬들은 또 한 번 속이 뒤집어질지도 모릅니다. 2015년 프로야구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벌써 하나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