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한화의 ‘초대형 딜’은 누구의 작품일까. 재계의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이재용(사진 맨 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6개월이 넘게 입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 입원 후 그룹 대내외 활동을 총괄해 왔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이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테크윈 등 이번의 계열사 매각 건은 한화그룹이 먼저 제안하면서 협상이 시작됐다”며 “이 부회장이 주도적으로 빅딜을 지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화가 방산부문인 삼성탈레스의 사업부 인수를 제안한 것이 이번 빅딜의 시초로 보는 시선도 많다.
하지만 아버지 이 회장의 입원 후 그룹 안팎에서 이 부회장의 위상이 높아진 건 분명하기 때문에 그룹의 중차대한 사안인 복수의 계열사 매각 의사결정에 이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룹의 사업구조 재편과 관련해 이 부회장의 실질적인 ‘첫 사례’라는 말도 나온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삼성SDS-삼성SNS 합병,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양도, 삼성웰스토리 분사, 제일모직-삼성SDI 합병, 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 합병, 제일모직과 삼성SDS 상장 등 사업 및 지배구조와 관련된 이슈가 쉴새 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것들의 주요 현안은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올해 5월 이전에 이미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제일모직 상장은 이 회장의 재가 후 사전 검토가 끝난 사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백지 상태’에서 이 부회장의 의사 결정으로 이뤄진 첫 번째 대형 거래 아니냐는 것이다.
이 회장의 공백이 이어지는 동안 그룹을 대표한 대외활동은 이 부회장의 몫이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리커창 총리, 경제분야를 맡는 마카이 부총리, 차세대 지도자 후보군으로 꼽히는 후춘화 광둥성 당서기 등을 잇달아 만났다.
미국 실리콘밸리 IT업계의 거물과도 연쇄적으로 접촉해 팀 쿡 애플 CEO, 래리 페이지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과 교류 폭을 넓혔다. 페이스북과는 페이스북폰, 가상현실(VR) 기기 등 사업화 논의가 진척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1) 한화솔라원 영업실장의 ‘친분’도 이번 빅딜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비즈니스스쿨 경영학과 박사과정)과 김 실장(정치학과)은 하버드대 동문이다.
삼성그룹이 주요 계열사를 국내 다른 대기업에 매각한 것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김현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