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부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부산의 모 대학 4학년인 A(25)씨는 지난 3월 7일 오전 1시쯤 다급한 목소리로 “여자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며 112 신고를 해 왔다.
경찰은 곧바로 A씨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름이 ‘권OO’라는 상대방은 수차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A씨에게 권씨의 인적사항과 주소 등을 물었다. 하지만 A씨가 아는 것은 22세인 권씨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미모의 여성이라는 게 전부였다.
A씨는 권씨에 대해 “2010년 1월쯤 한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서 알게 돼 4년간 전화통화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교제했지만 한 번도 만나지는 못해 주소를 모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는 사이 전화를 받지 않던 권씨는 경찰관에게 “남자친구에게 장난을 쳤을 뿐이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이 휴대전화 번호 명의자를 확인해보니 남자 이모(22)씨였다.
이상하게 여긴 경찰은 이씨를 찾아갔다. 그는 키 175㎝에 몸무게 약 95㎏의 건장한 남자였다. 당시 공익근무요원인 이씨는 “정OO란 사람에게 휴대전화 명의를 빌려줬을 뿐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납치나 감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권씨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실패했다. 이씨가 인터넷에서 미모의 여자 사진과 음성변조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든 가공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몰랐던 A씨는 권씨 행세를 하면서 “사채 빚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등의 어려움을 호소한 이씨에게 17차례나 200만원을 보냈다.
A씨는 경찰 조사가 이뤄진 지난 8개월 간 경찰이 “사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하는데도 “그럴 리가 없다”면서 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경찰은 최근 이씨의 옛 여자친구에게서 “이씨가 인터넷으로 여자 행세를 하며 장난을 친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씨를 추궁한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A씨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한동안 한숨만 내쉬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이씨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현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