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끝나면 늘 몸살이 와요. 감기에 걸려서 옮길까봐 가까이는 못 가요. 목소리가 이상해도 이해해 주세요.”
털털하게 양해부터 먼저 구하는 강소라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미생’ 속 안영이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 한 식당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강소라는 “극중 안영이와 실제 모습의 싱크로율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40퍼센트 정도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안영이는 남자 직원들로 가득한 종합상사에서 유일한 여자 신입이다. 원인터에 수석 합격, 신입답지 않은 빈틈없는 업무처리 등 완벽한 ‘워커 홀릭’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부족한 한 가지, 대인관계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익숙하지 않다.
“영이만큼 열심히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영이와 저의 다른 점은 ‘소통’ 이에요. 저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어울리는 편이에요. 영이처럼 독하진 못 하죠.”
스무 살에 연예계에 데뷔한 강소라는 직장 생활 ‘무경험자’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은 연예계 활동이 전부다. ‘미생’을 통해 직장인에 갖고 있던 편견이 사라졌다고 한다.
“직장 다니는 분들은 막연히 안정적일 거라 생각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승진하고 월급이 오르고, 하루 일과가 다 정해져 있는 걸로요. 제 일은 언제 작품에 들어갈지 모르고 승진도 없고, 금방 잊혀지기도 쉽죠. ‘미생’을 찍으면서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깨졌어요. 생각보다 훨씬 치열해요. 회사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도 아니죠. 조직사회인 만큼 싫고 좋음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도 너무 많아요.”
강소라는 ‘미생’을 통해 직장인들의 애환을 피부로 느낀 듯 했다. “아버지들이 퇴근 후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지, 수염을 깍지 않은 얼굴을 들이미는지, 왜 치킨을 사오는 지 등을 이해하게 됐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극중 영이는 하 대리(전석호)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실제로 하 대리 같은 상사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제 모습보다 더 털털하게 다가갔을 것 같아요. 질문도 많이 하고 말도 많이 걸어야겠죠. 솔직히 ‘왜 이렇게 미워하는지’ 답답해서 물어도 봤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이 불만이고,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 지를요. 연기할 땐 참는 게 힘들었죠.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속으로 생각하면서 표정연기를 했어요.”
그렇다면 강소라가 실제로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강소라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면 장그래 반, 한석율 반이지 않을까?”라며 “처음엔 어리버리하고 고지식한 면도 있지만, 관계가 풀리고 나면 술자리를 압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이어 “책임감도 있고, 도망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주재원으로 나가서 열심히 할 자신도 있다”고 했다.
강소라는 ‘미생’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고백했다. 안영이가 몸을 담은 자원팀에서 회식 장면이 단 한 번도 그려지지 않은 것이다. ‘미생2’ 제작이 유력해지는 가운데 시즌 2에서 어떤 이야기가 그려졌으면 하는지 강소라의 바람도 들어볼 수 있었다.
“팀원들 간의 회식장면이 나오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하다못해 점심이라도 같이 먹는 장면이 나왔었으면 했는데 없었죠. 시즌 2에서는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장면이 많이 그려졌으면 좋겠어요. 또 영이가 승진한 모습이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영이가 사수가 돼 신입사원들과 만나 그려지는 이야기요. 그리고 그래와의 관계도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요? 직장동료가 아닌 말 그대로 사적인 관계로 만나서 말이죠.”
2014년 SBS ‘못난이 주의보’ ‘닥터 이방인’, tvN ‘미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강소라다. 연기 스펙트럼을 꾸준히 넓혀왔지만 다음 작품에는 실제 모습이 많이 담긴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작품 계획이요? 아직은 딱히 없어요. 올해 세 작품 연달아 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안 좋은 캐릭터였죠.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너무 안 좋고 내면에 상처가 많았어요. 만약에 다음 작품 들어가게 된다면 표현도 많이 하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매끄러운, 활기찬 캐릭터를 맡고 싶어요. 실제모습이 많이 투영되게 말이죠.”
이혜리 기자 hy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