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치밀한 범죄 계획… 양양 일가족 방화 살인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치밀한 범죄 계획… 양양 일가족 방화 살인

기사승인 2015-01-09 14:10:56

강원도 양양에서 발생한 일가족 사망 방화사건은 치밀한 계획을 통해 벌어진 사건으로 드러났다.


속초경찰서는 살인 및 현주 건조물방화 혐의로 이모(41·여)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9시 38분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박모(38·여)씨의 집에 불을 질러 박씨를 비롯해 큰아들(13), 딸(9), 막내아들(6) 등 4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2013년 9월부터 최근까지 숨진 박씨로부터 1800만원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돈을 갚지 못하면서 ‘언니’ ‘동생’사이로 2년 넘게 친하게 지냈던 이들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달 26일 이씨와 숨진 박씨는 돈을 갚으라며 말다툼을 벌였다. 특히 고성이 오는 과정에서 숨진 박씨가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이씨의 자녀(16)의 장애를 비하하며 욕설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박씨의 말에 상처를 받은 이씨는 박씨 일가족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40분쯤 강릉의 한 약국에서 수면제 28정을 처방 받은데 이어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휘발유와 술, 음료수 등을 차례로 구입했다.

같은 날 오후 8시쯤 박씨의 집을 찾아간 이씨는 수면제를 미리 타 놓은 술과 음료수를 박씨 가족에게 나눠줘 마시게 한 후 4명 모두가 잠들자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방안에 뿌리고 불을 붙여 자신은 집을 빠져 나왔다.

경찰과 소방서가 신고를 받고 현장을 출동, 화재 진압에 나섰지만 박씨를 비롯한 일가족 4명은 숨진 채 발견됐다. 다행히 박씨의 남편 이모(44)씨는 교통사고 요양치료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특히 이씨는 사건을 저지른 뒤 화재 현장에 머무는 대담함을 보였다. 그는 오후 9시40분쯤 박씨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박씨의 집과 3㎞ 가량 떨어진 초등학교 인근에 차량을 정차해 놓고 소방차가 출동하기를 기다렸다.

2분 뒤인 9시44분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가 화재현장으로 가자 자신의 차를 이용해 뒤따라 간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현장에 도착한 박씨는 경찰과 소방관에게 집 안에 숨진 박씨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일가족이 강릉 아산병원으로 옮겨지자 자신도 응급실로 함께 이동하기도 했다.

또한 이씨는 담당 형사에게 전화를 직접 걸어 “그동안 가깝게 지내던 동생 박씨와 애들이 숨져 너무 괴롭다.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숨진 박씨의 지인으로 안타까워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참고인 조사에서는 ‘평소 박씨가 우울증을 앓아왔다’, ‘나에게 경운기에서 휘발유를 꺼내는 방법을 물어봤다’고 말하고, 이웃 주민들에게는 사건 당일 박씨와 별거 중인 남편이 가족들을 만나고 갔다는 사실을 말하는 등 수사 방향을 부부갈등에 의한 범죄로 오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이와 함께 박씨는 자신의 가족에게 “피해자의 하의가 다 벗겨지고 상의가 일부 올라갔었다”는 거짓말을 해 가족들이 경찰에 허위 신고하게 하는 등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시도도 했다.

당초 이번 사건은 단순 주택화재로 넘어갈 뻔했다. 2년 전 남편의 교통사고로 어려워진 가정형편 때문에 박씨가 어린 자녀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합동감식에서 휘발유 흔적을 발견됐고, 일가족 4명의 혈액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점 등으로 미뤄 방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의 혈액 검사 결과 한 모금만 마셔도 5분 안에 잠들 정도의 수면제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씨는 목격자에 머물 수 있었지만 여러 정황 증거 때문에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씨는 사건 당일 참고인 조사 중에 다른 지인들과는 달리 ‘박씨가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는 등 자살 가능성을 유일하게 진술했다. 일부 진술 번복을 물론 지병을 핑계로 쓰러지는 등 이상한 행동도 보였다.

경찰은 여러 정황 증거를 통해 방화 가능성을 확신했고, 주변인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인 끝에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이씨는 방화사건에 머물지 않고 피해자 박씨의 친언니에게 오히려 동생의 빚을 갚으라는 인면수심의 행동도 보였다. 지난 4일 이씨는 박씨의 언니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위조된 차용증을 보여줬다. 차용증에는 숨진 박씨가 이씨로부터 1800만원을 빌렸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 차용증은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발견한 차용증과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경찰이 발견한 차용증에는 이씨가 숨진 박씨로부터 1800만원을 빌렸고 2016년 9월가지 갚겠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박씨 언니에게 돈을 갚을 것을 종용했고, 돈이 없으면 백만원 단위라도 갚을 것을 요구했다”면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행”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현주 건조방화치사 혐의로 긴급 체포된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채무지급을 면하기 위해 박씨 일가족을 상해할 것을 마음먹었다”면서 “숨진 박씨가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박씨가 스스로 불을 내 죽은 것처럼 속이기로 계획한 것”이라고 자백했다.

경찰은 공범여부 및 여죄 등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조현우 기자
조현우 기자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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