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국제시장이 정치영화? 관객은 안다” 윤제균 감독의 진심론

[쿠키人터뷰] “국제시장이 정치영화? 관객은 안다” 윤제균 감독의 진심론

기사승인 2015-01-21 18:02:55
사진=박효상 기자

폭풍 같은 상황 속에서 침묵을 지켰던 윤제균(46) 감독은 당시를 “당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만든 영화 ‘국제시장’을 두고 사람들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했다. 흥행을 기대치도 않았던 영화에는 1000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렸다.

온 나라가 ‘국제시장’으로 들썩일 때 윤 감독은 두문불출했다. 최근에서야 다시 대중 앞에 나섰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의 JK필름 사옥에서 진행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윤 감독은 그간의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한 마디로 말하면 처음엔 되게 당황했었어요. 아무리 영화라지만 제 의도와 해석의 갭이 너무 커져버렸으니까요. 속도 많이 상했죠.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논란들은 극히 일부의 의견이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일반 관객 분들은 그런 논란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윤제균 감독은 ‘국제시장’을 통해 우리 시대 아버지의 삶을 조명하려 했다. 격동의 현대사를 견디고 눈부신 경제적 성장을 일궈낸 데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파독 광부 생활을 하고 베트남 전에까지 참전한 덕수(황정민)라는 인물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소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진중권, 허지웅, 윤주진 등 논객들은 연일 트위터 설전을 벌였다. 영화를 향한 날선 비판들이 연일 쏟아지며 점점 더 화제가 됐다. 좌우를 불문한 정치인들은 ‘국제시장’을 보겠다며 잇따라 극장을 찾았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 영화를 언급했다. 어느 순간 영화는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윤 감독은 ‘왜 이렇게 나의 진심을 몰라줄까’라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윤 감독은 “국제시장은 그냥 열심히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일만하신 아버지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한 마디 하려고 만든 영화였다”며 “왜 그런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잣대들로 폄하를 할까라는 생각에 속상했다”고 털어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만든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대로 안 받아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2주 동안 인터뷰를 안했던 거예요. 지금은 이제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는데 그 당시에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한다고 한들 진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았어요. 보는 시각에 따라선 확대 재생산도 될 것 같았죠. 그래서 그냥 입을 닫고 있었어요.”

당시엔 패닉 상태였지만 이젠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윤 감독은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아예 다른 시각으로 보셨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 싶다”며 “물론 영화엔 감독의 의도가 있지만 해석은 관객 몫이 되는 것이니 그분들이 틀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칭찬이든 반대든 영화에 대한 관심들이 모두 감사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논란이 흥행에 불이 붙이긴 했다. 하지만 “그게 핵심인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윤 감독의 생각이다. 윤 감독이 생각한 진짜 흥행 이유는 ‘진심’이었다.

“이 영화가 잘 된 건 저희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진심이 전달이 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관객 분들이 손을 잡아 주셨죠. 영화를 봤을 때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크게 논란이 돼도 이렇게 흥행이 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은 윤 감독 나름의 ‘흥행론’과 맞닿아있다. ‘해운대’(2009)에 이어 두 번째 천만 영화를 만들어낸 한국 최초의 ‘쌍천만’ 감독. 그는 관객들을 ‘하느님’에 비유했다. 얼마나 간절하게 진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관객들은 분명 알아줄 거라는 믿음이었다.

“흥행? 솔직히 말하면 하면 할수록 모르겠어요. 근데 한 가지는 알아요. 관객은 절대 우리의 진심은 알아준다는 것. 관객은 하느님인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하느님은 다 알잖아요. 이 사람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영화를 만들 때 얼마나 간절하게 진심으로 만들었는지 관객 분들은 다 아신다고 생각해요. 절대 관객을 속일 순 없죠. 한 15년? 실패와 성공을 해본 제 나름대로 기준이에요. (영화는) 진심을 다해서 잘 만들어야 한다.”


윤 감독이 영화에 담고자 한 진심은 ‘아버지에 대한 헌사’였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담아놓은 메시지도 있다. 소통과 화합이다. 윤 감독은 “젊은 친구들은 영화를 보면서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고, 반대로 부모님 세대는 치열했던 옛날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요즘 힘든 젊은 세대들을 역지사지하자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가수 남진을 영화에 등장시킨 이유도 있다. 전라도 출신인 남진이 경상도 출신인 덕수를 구해줌으로써 지역간 화합을 얘기했다. 이주노동자를 놀리는 어린 학생들을 혼내는 노인 덕수의 모습은 계층간의 화해였다. 영화의 이런 깊은 의도들은 모두 정치색 논란 속에 파묻혀버렸다.

“그렇게 세대간·지역간·계층간 소통과 화합을 본질적으로 깔고 영화를 만들었어요. 개봉이 되면 당연히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겠지 했죠. 그런데 개봉을 하고보니 정반대의…(폭소). 소통과 화합이 아니라 논란과 갈등이 폭발해버렸죠(웃음).”

이 얘기를 하면서 윤 감독은 허탈한 듯 연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윤 감독은 “(관객 반응이) 의도와 약간 다르게는 나올 수 있지만 이렇게 정반대로 나오는 경우는 없지 않느냐”며 “이 영화가 미약하게나마 소통과 화합에 기여해 그런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될 줄 알았는데 이건 뭐”라면서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요즘은 모든 사람들, 모든 것들에 다 감사해요. 기분도 좋고요. 근데 마음속에 딱 한 가지는 가지고 있어요. 사람은 가장 잘 됐을 때 잘해야 된다. 스스로 계속 다짐해요. 진짜 더, 더, 더 겸손해져야겠다. 작품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이보다 더 이상 어떻게 올라가겠나”라고 말하는 윤 감독에게 “왜 그런 말씀하시냐. 천만 세 번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말을 건넸다. 윤 감독은 “욕심 부리다가는 큰일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주목을 받고 있지만 분명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의 남은 바람은 딱 하나였다.

“이제는 내려올 일만 남았는데, 간절히 바라건대 조금씩 천천히 그렇게 내려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겸손한 것 외에는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실패도 많이 해봤기 때문에…(웃음). 더 겸손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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